"10년간 변한 게.." '갈비뼈 사자' 구조로 끝나지 않을 동물원 이야기
지난 7일,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이는 사자를 비롯해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된 동물들의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영상 속 장소는 경남 김해시에 위치한 부경동물원의 모습이었다.
영상이 공개된 뒤 김해시청 홈페이지에는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김해시는 이에 대해 “경영악화 등으로 사육환경 및 관리 상태가 좋지 못한 부경동물원의 동물 건강을 우려해 위촉 수의사와 지도 점검을 실시하고 있지만 건강에 별 이상은 없다”면서도, “이 동물원이 동물복지와 시민 눈높이에 맞도록 시설을 개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동물원 측에 이전 또는 폐쇄를 검토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과 부실한 동물 관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 개장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사자, 호랑이 등 맹수를 밀폐된 실내에 전시하고, 일본원숭이는 목줄을 채워 관람객 사이를 돌며 먹이주기 체험에 동원됐다. 당시 필자가 관할 시청의 담당자들과 시설을 방문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제재할 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필자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동물원 관리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2016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17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동물들의 삶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동물에게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규정만 존재할 뿐, 종별로 제공해야 하는 사육 환경과 관리 기준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원이 지켜야 할 의무는 없고 운영 근거만 담은 법은 동물복지는커녕 동물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설들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미흡했던 사항을 상당 부분 수정한 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안이 통과해 올해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다 해도 부경동물원 같은 시설이 당장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신규로 운영하려는 시설은 동물 종별 사육환경과 관리 기준을 갖춰 허가를 받도록 했지만, 이미 운영 중인 동물원들에게는 기준에 맞게 시설을 개선하는데 5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동물의 입장에서는 매우 긴 시간이다.
우리는 부경동물원 동물들의 복지를 동물원수족관법에만 맡겨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김해시는 동물원을 점검한 결과 '동물학대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을 사육하면서 적절한 환경과 관리를 제공하지 않아 동물이 일상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현행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동물보호법이 전부개정되면서 동물학대의 유형을 구체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에 규정된 몇 개의 유형에 들어맞는 행위로 인해, 동물의 신체에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힌 경우만 학대로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갈증이나 굶주림의 해소 또는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등의 목적 없이 동물에게 음식이나 물을 강제로 먹여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법이 이렇다 보니 양의 털을 깎지 않아 갑옷처럼 피부를 뒤덮고 있어도, 30도가 넘는 날씨에 그늘막 하나 없이 뙤약볕에 종일 노출되어 있어도, '동물학대는 아닌 행위'가 된다. 마치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는 격이다. 동물학대가 아니다 보니 소유자등으로부터 학대를 받아 적정하게 치료·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을 지방자치단체가 학대자로부터 격리할 수 있도록 한 동물보호법 조항도 무용지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2019년 캐나다 퀘벡에서 30년간 운영하던 동물원이 동물보호법(Animal Welfare and Safety Act)에 따른 동물학대 위반 혐의로 기소됐는데, 기소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동물 종별 요구에 적합하지 않고 배설물에 오염된 상태의 음식이 공급되었고, 매우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했으며, 적절한 수의학적 관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캐나다 법원의 판결은 단호했다. 사자, 호랑이, 곰, 늑대, 캥거루, 얼룩말 등을 포함한 200여 마리의 동물들은 몰수되어 북미 지역의 동물보호단체들이 운영하는 야생동물보호소로 분산 이송됐다. 동물원 운영자는 동물학대 혐의 사실을 인정했고, 벌금과 함께 상업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동물 소유 금지 명령이 병과되었다.
다행히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영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이 나섰다. 늙은 숫사자는 7월 초 청주동물원으로 이송될 전망이다. 이 사자는 2004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나 2016년 부경동물원으로 이관됐으니, 적어도 7년은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의 시멘트 바닥에서 산 셈이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에 따르면 육안으로는 외상이나 피부병 외에 동물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기 어렵지만 사자가 힘겹게 눕는 움직임으로 보아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말 한 마리도 함께 청주동물원이 돌보기로 했다. 뒷다리를 절뚝거리는데 기생충성 신경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만일 동물원에서 구충 등 기본적인 예방적 관리만 제공했어도 피할 수 있었던 질병이라면, 일부러 굶기거나 때리지 않았더라도 ‘돌봄의 의무’를 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부경동물원에는 이번에 이송이 예정된 두 마리 외에도 또 다른 사자, 흑표, 호랑이 등 100여 마리 동물들이 남아 있다. 게다가 부경동물원 운영자는 이곳뿐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대구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수달을 비롯해 동물 13마리가 폐사하자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 때문에 먹이를 줄여야 했다며 2020년 정부 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이 운영자는 지난해 대구의 또 다른 동물원에서 동물을 방치하고 낙타를 죽여 그 사체를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로 공급해 동물원 운영자 중 최초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
김해시는 지난 2021년 코로나 장기화로 부경동물원이 먹이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먹이 지원을 위한 협약‘을 체결해 1년 동안 먹이를 지원했다고 한다. 운영자가 매번 주장하는 대로 먹이 비용을 대지 못할 정도로 운영난을 겪고 있다면, 김해시 대책대로 이전을 추진한다 해서 동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동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안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구조·보호가 필요한 동물이 대량으로 발생하면 치료와 보호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야생동물은 가축화된 동물보다 더욱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동물원 운영으로 경제적 이득은 사업자가 챙겼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회가 그 비용을 오롯이 떠안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구조될 사자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비록 남은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을 밟으면서 사는 삶이 사자에게 큰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갈비뼈 사자’라는 이름으로 한때 관심으로 소비되는 존재가 아니라, 많은 동물들의 삶을 바꾼 동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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