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생존의 기로…민낯 드러난 디지털헬스케어, 과연 돈이 될까?
[편집자주]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촉망받는 미래산업이란 평가에 이견은 없는 듯하다. IT(정보기술)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의료 기술의 발달과 융합으로 여건은 갖춰졌다. 하지만 궁금증이 남는다. 너도나도 디지털 헬스케어라는데, 정말 돈이 될까. 규제 장벽을 넘고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까.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선두주자로 꼽히는 미국 글로벌 기업이 파산했다. 비대면 진료 허용 등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명과 암을 짚을 때가 됐다.
#지난 4월 세계 최초 디지털 치료제(DTx) 개발회사 '페어 테라퓨틱스'가 파산했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약물중독 디지털 치료제 '리셋'을 허가받은 뒤 업계 선두주자로 꼽혀온 회사다. 2021년에는 160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하는 가치를 인정받으며 나스닥에 상장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심각한 재정난 때문이다. 페어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1억2335만달러(약 1609억)로, 매출액 1269만달러(약 166억원)의 10배에 달했다.
전조 증상이 없던 건 아니다. 페어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말 현금 확보를 위해 직원의 20%가량을 해고했다. 지난 3월에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 매각, 합병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을 고려 중이라며 실패 시 청산이나 구조조정을 모색해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적합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파산, 나스닥 퇴출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비슷한 시기 나스닥에 상장된 또 다른 디지털 치료제 개발회사 '아킬리'에서도 위기가 표출됐다. 게임형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디지털 치료제 '엔데버Rx'로 FDA 승인을 받은 회사다. 올해 초 인력의 30%가량을 감축하고 다른 파이프라인은 개발 중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배경은 페어 테라퓨틱스와 같은 재정난이었다.
두 나스닥 상장사의 상황은 상징적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온갖 최첨단 기술과 서비스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미국 시장. 그곳에서 디지털 치료제 시장을 개척한 기업들이 오랜 기간 돈을 못 벌어 살림살이를 줄이고, 그것도 부족해 문까지 닫았다. 미국 시장에서도 아직 디지털 치료에 선뜻 주머니를 열지 않는단 의미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현재 시장 환경에서 성장 산업으로 지위를 굳히고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 너도나도 디지털 헬스케어 도전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후발주자인 국내도 상황이 마냥 긍정적이진 않다.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닥터나우, 굿닥 등이 제공한 비대면 진료가 대표적이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COVID-19) 기간 '한시적 허용' 수혜를 받아 급성장했고 코로나19 이후 장밋빛 미래가 전망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코로나19 기간 초진, 재진 구분 없이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재진만으로 범위를 제한했다. 초진은 섬과 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자 등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약 배송도 이들에만 열어줬다.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생존의 기로에 섰다. 규정이 전환된 지 한 달도 안 돼 체킷, 바로필 등 사업을 접는 업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재진 중심 비대면 서비스로는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격의료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99%는 초진 환자다. 이들이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면 기업(약 30곳)의 80%가 도산한다"고 반발한 이유다.
그나마 최근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정부 주재 회의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안이 도출되기까지 지속된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기존 업계와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맛봤던 고성장세를 재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은 "국내 비대면 진료가 갈라파고스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산업화까지 가도록 충분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해외기업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상용화를 위한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올해 2월 국내에서 첫 디지털 치료제(에임메드의 불면증 치료제 솜즈), 4월 두 번째 디지털 치료제(웰트의 불면증 치료제 웰트-I)가 탄생했지만, 아직 환자 치료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시장 안착을 위해선 건강보험체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논의가 더디다. 원하는 수가를 받아도 의사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적극 수용할지, 약사들과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 문제가 남는다. 곳곳이 난관이다.
송재호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은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국가에서 차지할 전략적 가치와 성장성,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사회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산업 진흥은 속도전 양상을 띨 것 같지만 실제는 이에 미치지 못해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제도적 보상 체계 확립과 데이터 활용도 제고, 과감한 규제 혁파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그래도 디지털 헬스케어" 이유는
이쯤되면 디지털 헬스케어와 '돈'은 아직 먼 얘기로 보인다. 디지털 치료제도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19년부터 연평균 20.5% 성장해 2025년 89억달러(약 11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되지만(삼정KPMG), 정작 구성원인 기업들은 돈을 벌지 못해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다. 기업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반도체, 통신처럼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디지털 헬스케어가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란 믿음은 굳건하다. 정부 및 업계, 국내와 해외 모두 이견이 없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판단에서다. 김법민 단장은 "더 많은 사람들에 효과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스마트한 의료 서비스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새로운 기술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개발되고 있다"며 "매출 일으켜 자생하는 국내 기업이 없다면 외국기업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향후 보건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일부지만 돈을 버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의료 인공지능(AI) 솔루션 업체 루닛, 건강관리 앱(애플리케이션) 개발사 넛지헬스케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명확한 사업모델 구축, 해외시장 공략 등 전략을 바탕으로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특히 넛지헬스케어는 흑자를 낸 지 오래됐다.
카카오벤처스에서 디지털헬스케어 투자를 이끄는 김치원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도 결국 의료비를 아껴주고, 기업은 실제 돈을 버는 등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초기에는 이 부분에서 막연한 회사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겠다'가 보이는 회사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도 한국 의료 시스템 구조 등 당장 돈 못 버는 요인이 있어 우려하는 부분은 있지만 트렌드상 맞는 것이란 전제를 갖고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거스를 수 없지만 아직 블루오션인 시장이 디지털 헬스케어다. IT 기술이 뛰어나면서 제약·바이오 산업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에 매력적인 시장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배출하기 위한 환경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송승재 벤처기업협회 디지털헬스케어정책위원장(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은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개혁이나 산업 진흥을 위한 대책 발표가 이어지는 만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위한 도로가 제대로 설계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정된 미래."
제약·바이오와 의료 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가 유망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전문가는 '확정된 미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 시장성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단 뜻이 담겼다.
■ 시장규모 4년 뒤 700조원 육박…필연적 장밋빛 미래
이유는 뭘까. 우선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와 IT(정보기술)·AI(인공지능)·로봇 등 기술 발달이 맞물려 의료 현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갈수록 의료 시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인 서비스를 요구할 테고 이에 따라 디지털 기반 의료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주요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나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듯 의료 서비스 역시 스마트한 디지털 헬스케어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국내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며 이미 많은 환자가 원격진료의 편리함을 경험했다. 규제 영역과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란 의료 시장의 큰 흐름은 이미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많은 환자 사이에서 "간단한 통증인데 1시간 기다리고 의사랑 1분 대화하고 약을 타야 하는 비정상적인 불편함을 겪지 않아 좋다" "여러 사정으로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나 보호자에게 정말 유용하다" 등 호평이 나왔다.
우리 정부도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바이오와 헬스케어를 미래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해외 시장 진출, 규제 개선 등 측면에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0년 1520억달러(약 198조원)에서 2027년 5080억달러(약 662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18.8%에 달한다. 더 나아가 TLGG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연평균 28% 성장하며 2035년엔 처방전 기반의 치료제 시장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송승재 벤처기업협회 디지털헬스케어정책위원장(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은 "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IT 서비스를 활용해 기존에 깔아둔 도로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스마트 시티'와 같다"며 "의사 한 명이 더 많은 환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의료' 도입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 디지털 헬스케어 눈앞으로 성큼
디지털 헬스케어는 다양한 IT 기술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이 융합하며 의료, 건강, 진료, 치료, 예방, 재활, 요양 등 영역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와 의료기기, 치료제, 플랫폼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신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치료뿐 아니라 예방과 건강관리 등에 시장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영역이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플랫폼 기술 등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전통적인 방식보다 효율적일 수 있단 공감대가 의료 현장과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주변 곳곳에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디지털 헬스케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루닛과 뷰노 등 기업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질환이나 질병 조기 진단 기술을 앞세워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올해 챗GTP가 불러온 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기업가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주식 투자자에겐 낯익은 이름이다.
국산 1호 디지털 치료제도 올해 등장했다. 에임메드의 디지털 불면증 치료제 '솜즈'가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스마트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형태로 의사의 처방을 받은 환자가 사용할 수 있다.
또 곧 IPO(기업공개) 공모에 나서는 파로스아이바이오처럼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도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많은 사람이 유용하게 쓴 '굿닥' 같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일종이다.
■ 아직 지배자 없는 블루오션…세계 시장 기회 잡아야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아직 절대적인 지배자가 없기 때문이다. 포털 구글, 온라인 유통 아마존, 메모리 반도체 삼성전자 같은 절대 강자가 없는 시장이다. 소수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가 과점하며 독보적인 지배력을 구축한 제약 시장과도 다르다.
그래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한다면 국내 스타트업이나 벤처도 얼마든지 도전장을 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IT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라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기회를 잡기 수월한 측면도 있다.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글로벌 기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 개인 의료 정보 보호 등 규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의료 시장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기기나 서비스로 당장 이익을 내기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실제 국내 주요 의료 인공지능, 빅데이터, 신약 개발,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 기업 중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 의미 있는 수준의 지속적인 매출 성장과 안정적인 이익률을 확보한 기업은 아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디지털 헬스케어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해당 산업에 속한 기업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이 언제까지 외부 투자에만 의존하며 꾸준히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일부 산업 현장에선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데 국내 기업만 규제에 가로막혀 세계 시장 진출의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니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이 협업을 통해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고 실제 이익 창출로 연계하는 성공 모델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성장 기업이 등장하고 투자가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기업과 시장이 투자해 이익을 내고 서비스와 제품, 기술력을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 건강에 기여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은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으로, 국내만 보면 새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고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기 위한 어려운 도전을 할 만한 시장 규모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세계 시장을 노릴 수 없는 서비스나 기술이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먼저 경험과 실력을 축적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구조를 안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재호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은 "디지털 헬스케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바이오헬스에 포함해 국정과제이자 6대 국가첨단전략산업의 하나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키우기 위해 소비자 사용성 제고(가치입증), 공공헬스 적용(국민체감), 해외진출(내수한계 극복) 등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육성과 규제 허들을 넘기 위한 입법적 개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미래는 밝겠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과연 이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돈을 벌 수 있을까. 결국 이익이 나야 스타 기업이 등장하고 시장이 커지고 산업이 발전한다.
아직 디지털 헬스케어로 돈을 버는 기업은 드물다. 아직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시장성에 기반한 독보적인 기술력이 없다는 데 있다. 이미 많은 국내 기업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표방하며 주식시장에 상장했거나 많은 투자를 받았다. 그럼에도 아직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 기반의 디지털 재활 솔루션을 앞세워 2018년 코스닥에 상장한 네오펙트 같은 부정적 사례도 있다. 네오펙트는 상장 이후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적자를 지속하다 최대주주가 지분을 팔고 올해 주인이 바뀌었다. 국내 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 중에서도 아직 이익을 내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 그만큼 디지털 헬스케어로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단 방증이다.
한 예로 올해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제 2종이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향후 얼마나 의료 시장에 침투해 국민 건강에 기여하며 시장을 키울 수 있을진 미지수란 평가도 나온다. 디지털 치료제가 있어도 의사가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처방할지 알 수 없다. 또 인지 행동 치료에 기반한 디지털 치료제의 경우 언어나 문화 차이가 있는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사업 모델과 공략 대상 선정, 해외 시장 진출, 차별화된 콘텐츠와 서비스개발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대표는 "시장 규모가 제약된 국내 사업만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타깃을 정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뚫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은 "우리나라에도 이미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해 많은 기술 개발 시도가 있고 서비스나 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기술만 내세울 뿐 이익을 내기 위한 사업 모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쉽다"며 "시장에서 비용 지불자 역할을 하는 건보(건강보험)나 민간보험, 병원과 환자에 얼마나 혜택을 제공하고 주머니를 열 수 있을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AI 잘하니 해외서 매출이 팍팍…루닛의 쾌속질주
의료 AI 기업 루닛은 성공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사례다. 올해 루닛은 국내 주식시장의 스타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올해 주가 상승률은 500%에 달한다. 지난해 말 종가는 2만9800원. 현재 주가는 17만원 안팎이다.
아직 적자 회사이긴 하지만 매출액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올해 1분기에만 11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스스로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 139억원을 한 분기 만에 거의 따라잡았다. 이 정도 매출 증가 속도면 머지않아 흑자 소식을 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 1분기 루닛 수출액은 97억원으로, 전체 매출 비중은 88.6%에 달한다. 매출의 대부분이 수출인 셈이다. 해외 시장에서 루닛의 기술 경쟁력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의료 현장이나 신약 개발 연구 등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닛의 고속 성장은 'AI로 암을 정복한단' 뚜렷한 사업모델, 독자적인 의료 AI 기술 경쟁력과 해외 시장 공략 전략이 어우러진 결과란 평가다. 루닛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 암 진단 솔루션의 진단 알고리즘은 비교적 높은 정확도를 바탕으로 국내외 업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를 토대로 2019년 후지필름, 2020년 필립스, 2021년 GE헬스케어와 독점 파트너십을 맺고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또 미국 가던트헬스와 공동 개발한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 제품을 출시하며 진단 외 사업 영역에서 처음으로 매출을 올리는 등 상업화 성과에 공을 들였다. 노력은 결실로 돌아왔다. 루닛은 최근에도 한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암 정복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일본에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게 됐단 성과를 전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최근 매출 확대는 후지필름 등 해외 파트너십 성과가 실제 의료기관을 통한 솔루션 판매로 이어진 영향"이라며 "인공지능 바이오마커 등을 활용한 글로벌 빅파마와 공동 연구 확대 등을 통한 추가 매출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암 진단 분야에서 해외 판매망을 확대하고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해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이겠다"며 "암 치료 분야에선 글로벌 제약사와 지속적인 협업 관계를 구축하고 공동 연구와 임상 참여에 나서는 동시에 미국 FDA(식품의약국) 등 해외 규제기관의 승인 절차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와 함께 국가 암 건진 사업 등 B2G(기업과 정부 간 거래) 영역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 넛지헬스케어의 대박, 명확한 사업모델이 핵심
2016년 설립된 넛지헬스케어도 성공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사례로 꼽힌다. 걸으면 금전적 보상을 주는 '캐시워크' 앱을 개발한 기업이다. 작년 연결 기준 매출 793억원, 영업이익 106억원을 기록했다. 돈 벌고 흑자까지 내는 국내외 몇 안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다. 전년보다 매출액은 39%, 영업이익은 12% 늘면서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명확한 사업모델'이 넛지헬스케어의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캐시워크는 동기부여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넛지(Nudge)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다. 동기부여 수단은 리워드 형태의 금전적 보상이다. 넛지헬스케어는 캐시워크를 '돈버는 만보기'로 정의했다. 누구나 쉽게 원리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직관적 컨셉이다.
캐시워크는 출시 후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 이상(다운로드 2000만건)이 사용하는 앱이 됐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만 600만명에 이른다. 매력적인 플랫폼이 되면서 광고주가 몰렸다. 넛지헬스케어는 광고 노출시간을 경매처럼 운영하는 기법을 접목해 동기부여 재원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용자에 돈을 주는 앱이 돈을 버는 앱이 된 배경이다.
넛지헬스케어는 최근 무대를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했다. 작년 말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시장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에 캐시워크를 출시했다. 글로벌 캐시워크는 약 반년 만에 다운로드 200만건을 돌파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국가별 언어 지원은 물론, 보상을 지원하는 제휴업체를 확보해 현지 사용자가 느끼는 보상 효용감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한 영향이다. 조만간 다른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나승균 넛지헬스케어 대표는 "다변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캐시워크는 일상 속 건강관리 즉, '예방'에 특화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앱으로 자리잡았다며 "대규모 트래픽이 발생하는 국내외 캐시워크의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과 포트폴리오 확장으로 대표 건강관리 앱의 자리를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김도윤 기자 justice@mt.co.kr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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