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의 동양 폭격…, 빛났던 백인 돌격대장 와센버그

김종수 2023. 6.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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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토리⑦] 2000년 12월 16일

 

‘원주 DB 프로미의 역사는 김주성이 입단하기 전, 김주성의 현역 시절, 김주성의 은퇴 이후로 갈린다’는 말이 있다. 통산 3회 우승에서 모두 기둥 역할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DB에서 김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 그 자체였다. 김주성이 팀에 들어온 후 우승을 시작했으며 김주성이 은퇴하고나서는 아직까지 우승과 인연을 맺지못하고 있다.


하지만 열성 DB팬들은 김주성이 들어오기전 시절도 나름 낭만이 있었다고 회고하는 모습이다. 우승 후보와는 살짝 거리가 있었지만 특유의 투지를 앞세워 어느 팀을 상대로도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다. 원년부터 꾸준하게 원주 팬들이 성원을 보내고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신 삼보 시절인 2000~2001시즌 또한 그랬다.


허재, 신기성, 양경민, 김승기 등을 주축으로 모리스 조던(45·204cm), 존 와센버그(49·191cm) 두 외국인선수가 맛깔나는 농구를 보여줬다. 얇은 선수층과 그 와중에도 계속된 부상 속출로 인해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절이었지만 한번 터지면 어떤 팀도 무섭지 않을 만큼 폭발력이 돋보였다. 상위권팀을 상대로도 가비지타임을 가져갔을 정도다.


당시 비슷한 행보를 가져가던 팀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대구 동양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선수층에서는 삼보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성적은 하위권을 멤돌고있었다. 하지만 삼보가 그렇듯 터지는 날은 우승후보 부럽지않은 화력을 뽐냈다. 그런 두팀이 2000년 12월 16일 서로 격돌했다.

프로농구 2000~01 시즌 정규리그, <삼보 vs 동양>

1쿼터: 동양은 삼보 공격의 시발점인 포인트가드 신기성을 파이팅이 좋은 이흥배를 선발로 투입하여 전담 마크했고 힘이 좋은 백인 파워포워드 와센버그에게는 마이클 루이스(48·195cm) 대신 센터 토시로 저머니(48·202cm)를 붙였다. 이러한 수비전략은 경기 초반 잘 맞아떨어졌다.


맞춤형 디펜스에 막혀 삼보의 공격은 좀처럼 풀리지않았다. 수비가 잘되자 공격도 술술 풀렸다. 외국인 포워드 루이스는 양경민을 상대로 신체조건과 탄력, 개인기의 우세 등을 앞세워 연거푸 득점을 성공시켰다. 김병철 또한 오픈찬스에서 꼬박꼬박 3점슛을 넣어주면서 삼보 수비진을 전방위로 흔들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너무 의욕적으로 수비를 한 탓이었을까. 동양의 팀파울 개수는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영리한 신기성은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잇단 돌파를 통해 파울을 유도하며 자유투를 얻어내며 동양 수비진을 압박했다. 동양으로서는 점수 차이를 벌릴 수 있는 기회에서 지지부진한 마무리로 추격을 허용한게 못내 아쉬웠다. 결국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32대31로 겨우 1점을 앞선채 1쿼터를 마쳤다.
 


2쿼터: 농구는 흐름의 경기다. 이를 입증하듯 1쿼터에서 동양의 공세를 잘 견디어낸 삼보의 반격이 시작됐다. 삼보는 신기성과 조던이 오프 더 볼 무브를 통한 정확도 높은 슛을 연거푸 성공시키고 와센버그의 돌파가 살아나면서 분위기를 탔다. 이에 반해 동양은 루이스와 김병철의 몸놀림과 슛은 괜찮아 보였으나 둘의 공통된 문제점인 좁은 시야와 낮은 BQ가 발목을 잡으면서 개인 플레이만 남발했다. 삼보는 이들의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속공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뒤집었다.


동양은 1쿼터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일찌감치 팀 파울에 걸려 버렸고 이를 이용한 신기성의 날카로운 패스가 빈공간의 동료들을 향하면서 공격을 원활하게 풀어나갔다. 이에 반해 동양은 포스트 인근으로 볼을 제대로 투입하지 못하면서 우왕좌왕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 신기성같은 확실한 포인트가드의 존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동양도 반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베테랑 가드 이인규를 투입해서 반전을 꾀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이인규의 투입으로 동양은 어지러운 분위기가 정리되면서 서서히 팀 플레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인규는 안정된 리딩과 패싱게임에 더해 외곽 슛까지 터트려주며 코칭스탭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해줬다. 골밑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 리버스 턴으로 신기성을 제치고 레이업슛을 올려놓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동양은 이인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속공 마무리 미숙과 그로인한 삼보의 역 속공에 쉬운 득점을 헌납했고 50대54, 4점 차까지 따라붙은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경기내용에 비해 점수를 벌리지못한 삼보나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근소한 차이를 유지한 동양, 양쪽다 승부를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3쿼터: 후반 들어서도 흐름을 리드해나간 쪽은 삼보였다. 점수 차이를 떠나 조직적인 움직임과 선수들의 고른 활약에서 차이가 났다. 동양은 루이스의 슛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으나 이인규 정도 외에는 제대로 패스를 연결시켜주는 선수가 없었다. 손끝이 뜨거운 이날의 루이스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이에 반해 삼보는 신기성은 물론 식스맨 김승기까지 좋은 몸놀림을 보이며 이인규 홀로 고군분투한 동양 가드진을 말 그대로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김승기는 파이팅이 넘쳤다. 고비마다 3점슛과 미들 슛을 자신감있게 넣어주었고 분위기가 동양 쪽으로 넘어간다 싶을 순간에는 벼락같은 스틸로 흐름을 끊어버렸다.


비하인드 백 패스를 바운드 패스 형식으로 와센버그에게 넣어주며 골밑 공격을 합작한 장면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기복이 심하고 시야가 넓지못하다는 약점은 있지만 상황에 맞게 벤치에서 출격하는 식스맨 김승기는 어느팀 백업가드 못지않았다. 워낙 자신감 넘치게 경기하는 스타일인지라 컨디션이 좋은 날의 김승기는 그냥 주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삼보는 가드진의 맹활약 속에서 속공과 세트오펜스를 교대로 선보이며 83:71로 여유 있게 점수차를 벌려나갔다.
 


4쿼터: 패넌트레이션과 패스아웃이 좋아지고 포워드 박재일이 폭넓은 활동량을 통해 팀의 에너지 레벨을 높여주면서 동양의 경기력이 다시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공격 리바운드 참여도 돋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속공 미숙과 공격의 마무리가 잘되지 않으며 흐름을 가져오는 데는 실패한다. 불씨는 살렸지만 불길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삼보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았지만 특히 40득점 이상을 기록한 와센버그의 기세가 엄청났다. 와센버그는 국내 리그 기준으로봐도 파워포워드를 맡기에는 언더사이즈였다. 거기에 3점슛은 물론 미들슛까지, 슈팅력이 거의 없다고봐도 무방할 정도로 좋지않았다. 때문에 공격의 대부분이 골밑 돌파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타팀의 수비수들 역시 뻔히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와센버그에게는 자신만의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 어지간한 흑인 센터와도 몸싸움이 가능할 정도로 힘이 좋았으며 스피드 또한 발군이었다. 성격도 거침없고 호전적인지라 이것저것 신경쓸 것 없이 달려들 듯 상대 포스트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센버그는 수준급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하얀 탱크’라는 별명도 거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날 동양은 와센버그를 전혀 막지못했다. 루이스는 힘에서 밀리고 저머니는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던지라 뻔히 알면서도 당하기 일쑤였다. 뛰어난 아이솔레이션 공격에 더해 속공시 마무리를 담당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개인 공격만 시도한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킥 아웃 패스를 통해 외곽찬스를 봐주는 것은 물론 수비시 적재적소에서 스틸을 기록했다. 삼보는 사실 조던이 평균 정도의 경기력만 유지했어도 하위권을 멤도는 것이 아닌 중위권 경쟁을 하고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조던의 경기력은 코칭스탭 입장에서도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일단 조던은 와센버그처럼 자신만의 장점이 있었다. 장신임에도 느리지 않아 뛰는 농구가 가능했다. 거기에 페이드 어웨이슛, 뱅크슛, 훅슛 등 공격루트가 다양했으며 자유투도 준수한 수준이었다. 와센버그와 달리 슈팅 자체가 전반적으로 좋았다. 반면 힘과 체력에서는 유달리 약한 모습을 노출했는데 이는 타팀 센터들과의 매치업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날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보다 작은 동양의 백업 빅맨 정구근에게도 몸싸움에서 밀리는가하면 후반으로 가자 지쳐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무난했던 전반전과 달리 경기력이 뚝 떨어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파워는 어쩔 수 없다지만 체력 문제는 삼보 벤치의 머리를 아프게하는 요소임이 분명했다.


이날 삼보에서는 와센버그가 유달리 펄펄 날았고 동양에서 이를 의식하고 더블팀 등 집중수비를 펼치면 김승기와 신기성 등의 3점슛이 불을 뿜었다. 동양은 위기에 몰리자 또다시 고질적인 외곽슛 난사를 되풀이했고 결국 점수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비슷하게 주고받다가 최종스코어 91대109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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