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우주의 유령 입자, 우리은하에서도 나왔다
그동안 다른 은하에서 온 중성미자만 찾아
빛 대신 중성미자로 은하 연구할 길 열려
남극의 얼음 천문대가 ‘우주의 유령입자’인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를 우리은하에서 처음으로 포착했다. 그동안 멀리 있는 다른 은하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는 검출했지만, 우리은하에서는 찾지 못해 과학계의 숙제로 남아있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우리은하를 빛이 아닌 중성미자라는 새로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반겼다. 이른바 ‘중성미자 천문학’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의 프랜시스 할젠(Francis Halzen)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3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남극의 중성미자 연구시설인 아이스큐브(IceCube)에서 처음으로 중성미자를 이용해 은하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이스큐브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4국 58개 연구기관에서 350여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김영덕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그동안 아이스큐브 실험이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들을 측정하고 어디서 오는지 확인해 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은하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하에서 나온 중성미자 첫 포착
중성미자는 고에너지 입자인 우주선(宇宙線)이 원자와 충돌할 때 발생하며,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이다. 우주가 탄생한 빅뱅(Big Bang·대폭발) 직후에도 나왔고,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이나 원자력발전소의 핵분열에서도 출현한다. 유령 입자로 불리는 것은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태양에서 온 중성미자가 1초에 수조개씩 지구를 통과한다.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우리은하에서 나온 중성미자가 남극 지하 2㎞에 있는 얼음과 반응할 때 나오는 빛을 포착했다. 남극 아문젠-스콧 기지에 있는 아이스큐브는 2010년 건설됐다. 아이스큐브 과학자들은 남극 지하의 1㎦ 부피의 얼음에 광센서 5160개를 심어 놓고 중성미자가 100만개 중 하나 꼴로 아주 드물게 물을 이루는 수소·산소 원자핵이나 전자와 부딪히는 흔적을 찾아왔다. 중성미자가 원자핵에 부딪히면 연못에 돌멩이를 던질 때 나타나는 파문(波紋)처럼 원형으로 빛의 충격파가 생긴다. 광센서는 이 신호를 감지한다.
아이스큐브는 그동안 다른 은하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잇따라 포착했다. 2017년 지구에서 37억광년(光年, 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블랙홀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포착했으며, 이어 지난해에는 4700만 광년 떨어진 고래자리 A은하(NGC 1068)로부터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 79개를 검출했다. 하지만 그보다 가까운 우리은하에서는 중성미자를 찾지 못했다. 아이스큐브를 이끌고 있는 할젠 교수는 “흥미로운 점은 모든 파장의 빛은 가까운 곳이 더 밝지만, 중성미자는 더 먼 우주가 밝다는 것”이리고 말했다.
우리은하에서도 우주선이 은하 가스, 먼지와 부딪혀 필연적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빛인 감마선과 함께 중성미자도 생성한다. 연구진은 은하면에서 감마선이 관측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은하수에서도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나온다고 예측했다. 은하면은 원반 모양으로 은하의 질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면을 말한다.
은하수는 남반구에서 더 잘 보인다. 하지만 중성미자는 관측하기 어려웠다. 우리은하에서 온 우주선이 지구 대기와 충돌하면서 나오는 입자가 중성미자 신호를 가렸기 때문이다. 미국 드렉셀대의 나오코 쿠라바시 닐슨(Naoko Kurahashi Neilson) 교수 연구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과학자들이 집중해온 것과 다른 중성미자 신호를 분석했다.
중성미자가 얼음 속 원자핵과 충돌하면 빛이 나오는데, 지금까지는 멀리서 온 긴 궤적의 빛에 집중했다. 대신 드렉셀대는 기원을 알기 힘든 구형의 빛을 분석했다. 그동안 무시하는 신호에 집중한 것이다. 연구진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항상 정확히 원형이 아닌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중성미자의 방향은 모든 방향에서 완전히 대칭이 아니어서 어디서 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지난 10년간 아이스큐브 관측 자료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중성미자가 만든 빛의 형태를 보고 어디서 왔는지 알도록 지난 10년간 포착한 6만여개의 중성미자 정보를 기계학습시킨 것이다. 은하면에서 중성미자가 많이 나오는 위치를 찾아 이미지를 만들었더니 가시광선, 감마선으로 관측한 은하면과 모양이 일치했다. 중성미자로 은하를 관찰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유인태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중성미자는 투과성이 강한 입자로 왜곡 없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중력파 천문학에 이어서 최근 중성미자 천문학이 크게 각광받고 있다”며 “인공지능을 과학연구에 효율적으로 적용해 기존 방법으로는 연구가 어려웠던 분야를 새로 개척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고 말했다.
◇1995년 이래 중성미자 연구로 노벨상 쏟아져
중성미자는 노벨상의 보고(寶庫)이다. 1956년 미국 물리학자 프레더릭 라이너스는 원전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처음으로 관측했다. 그는 199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앞서 1988년 미국 과학자 세 명이 입자가속기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일본 과학자들도 그 뒤를 이었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대 교수는 폐광에 물 4500t을 담은 중성미자 관측 시설 가미오칸데에서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교수는 가미오칸데의 업그레이판인 2세대 수퍼 가미오칸데에서 대기에서 발생한 중성미자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종류가 바뀐 것을 관찰해 역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가 잇따라 검출되자 중성미자 천문학으로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크게 넓힐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아이스큐브가 중성미자의 흔적을 감지하면 전 세계 천문대가 중성미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발원지를 찾는 방식이다. 드렉셀대의 닐슨 교수는 “빛 대신 입자로 우리은하를 처음으로 관측한 큰 발전”이라며 “중성미자 천문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렌즈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별 표면에서 나오는 낮은 에너지만 관측했다. 과학자들은 별이 폭발할 때 중심부에 있는 훨씬 더 큰 에너지는 중성미자를 통해 우주로 방출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중성미자를 통해 별의 폭발도 과거와 달리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다음 단계로 구체적으로 은하면 어디에서 중성미자가 나오는지 찾을 계획이다. 아이스큐브 대변인인 미국 조지아 공대 이그나시오 타보아다(Ignacio Taboada) 교수는 “우리은하에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나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공동 연구진의 엄격한 시험을 통과했다”며 “다음 단계는 은하면의 어디서 중성미자가 나오는지 식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유인태 교수는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규모의 한국 중성미자 관측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도 향후 중성미자 천문학의 선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c9818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i6277
Science(2022), DOI: http://science.org/doi/10.1126/science.abg3395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t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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