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는 멜론·참외 ‘심폐소생’ 요리법 [ESC]
무 같은 참외, 겉절이 무쳐 먹기
덜 익은 멜론은 ‘솜땀’으로 변신
피시소스로 ‘짜고 강렬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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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와 멜론, 오이는 형제간이다. 과문하지만 참외는 한국만 먹는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외국은 안 먹는다지’라고 생각했다. 멜론이 한국에 팔릴 때 ‘서양 참외’라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맛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참외 참 많이 먹었다. 요새야 온갖 과일이 있지만 과거에는 참외 철에는 모두 참외를 먹었다. 참외 아니면 수박.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참외가 좀 빠르고 그다음이 수박. 수박이 한창이면 슬슬 포도가 나왔다. 그렇게 배턴 터치하는 게 과일의 세계였다. 요새는 출하 시기가 그다지 순서가 없다. 촉성재배, 시설 재배를 하면서 계절감을 거스르고 앞당겨야 그나마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젓갈·설탕으로 감싸는 겉절이
참외를 깎아 먹으면 껍질이 남는다. 배가 고프거나 심심해서 그걸 먹었다. 세상에 맛없는 게 참외껍질이다. 요새 과일은 다 달다. 기술이 좋아졌다. 품종도 개량됐다. 금싸라기라고 이름 붙은 참외가 나오면서 대체로 참외가 달아졌다. 옛날엔 뽑기 운이 있었다. 운이 나쁘면 무 씹는 것 같은 참외도 걸렸다. 어머니는 그런 참외는 요리로 만들었다. 속은 따로 먹든가 하고 참외 속살을 저며서 무쳤다. 겉절이였다. 아니면 냉면에 넣었다.
겉절이는 속성 김치다. 딱 필요한 재료를 넣고 빠르게 무쳐 먹는다. 김치는 익히는 것인데 겉절이는 날로 먹는 걸 의도해서 만든다. 익힌 감칠맛이 없으니 강한 젓갈과 설탕 같은 단맛으로 감싸야 한다. 강렬한 맛을 원하면 꽁치젓갈도 좋다. 설탕, 마늘을 함께 섞어서 참외 과육과 섞고 고춧가루를 조금 넣는다. 신맛을 원할 때는 식초를 넣는다. 식초는 시중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곡식으로 만든 것, 또는 과일로 만든 것. 곡식으로 만든 건 우리가 보통 만나는 식초다. 양조식초니 하는 것들이다. 과일 식초로는 사과식초가 흔하다. 레드와인 식초니, 화이트와인 식초니 하는 것들도 과일 기반 식초다. 과일 식초는 더 찌르는 맛이 있고 상큼하다. 곡식으로 만든 것들은 부드럽고 친절하다. 중국식품점에서 ‘흑초’라는 걸 파는데, 쌀이나 현미에 보리를 섞어 만든 것으로 산도도 낮고 단맛이 있다. 이걸 한 병 사두고 써도 좋다. 식초도 골라 쓰는 게 선수다.
알뜰한 시대의 상징 ‘껍질 김치’
만들어둔 참외 겉절이는 냉장고에서 익으면 아삭한 맛이 사라져서 그다지 먹을 만하지 않다. 그날 만들어 그날 먹어야 한다. 수박 껍질 김치도 누군가에겐 여름의 별미였고 누군가에게는 ‘혐오(?) 음식’이었다. 나는 후자였다. 수박을 다 파먹고 나면 껍질이 나온다. 안쪽의 흰 부분을 칼로 잘라서 무침에 가까운 겉절이를 만든다. 아주 정식으로 김치처럼 담그는 엄마들도 있었다. 수박 겉절이 내지는 무침이라는 음식은 ‘알뜰한 주부’의 상징처럼 강요되기도 했다. 식량 부족 시대의 풍경이었다.
20여년 전부터는 멜론이 흔해졌다. 값도 싸졌다. 재배 농가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다른 과일도 흔히 숙성하지만 멜론은 전형적인 숙성의 과일이다. 덩굴에 달린 채로 다 익어서 내지 않는 것 같다. 요리 재료로 멜론을 많이 썼다. 이탈리아의 여름 대표 전채요리는 ‘프로슈토와 멜론’이다. 생햄과 멜론을 같이 낸다.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저미고 썬 두 재료를 같이 툭, 낸다. 생햄은 짜고 멜론은 달다. 단짠의 맛이다. 입맛이 돈다. 거친 와인을 마시면 기막히다. 요새야 생햄을 인터넷에서 많이 파니까 구하기도 쉽다.
멜론은 샀으면 배꼽을 눌러보자. 단단하면 상온에 두어 며칠 더 익히는 게 좋다. 말랑해지면 틀림없이 멜론 과육이 달고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어떤 멜론은 숙성이 다 됐는데도 배꼽이 단단한 경우도 있다. 그러니 제일 안전한 방식은 가느다란 젓가락 같은 것으로 찔러보는 것이다. 쑥 쉽게 들어가면 다 익은 것이다. 향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면 역시 익은 것으로 보면 된다. 다 익은 줄 알고 멜론을 잘랐는데 덜 익었을 때, 또는 아무리 익혀도 맛없는 멜론일 때는 생식하지 말고 솜땀이나 샐러드를 만드는 게 좋다. 솜땀은 그린 파파야로 해야 하지만 적당한 다른 과일로 해도 먹을 만하다. 역시 양념이 중요하다. 솜땀을 현지 맛처럼 만들자면 ‘짜고 강렬한 향’이 제일이다. 물론 그린 파파야도 구하기 쉽다. 본토의 맛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멜론을 이용한 간단한 솜땀 조리법
멜론 1개(맛없는 것. 싼 건 대체로 맛이 없다.)
태국 피시소스(남플라. 한 병에 2~3천원 한다. 없으면 그냥 한국 멸치젓이나 기호에 따라 액젓도 좋다) 2~3숟가락
빨간 물고추 매운맛 3개(외국식품점에 동남아 고추를 피클로 절여놓은 걸 판다. ‘레드칠리 피클’ 227g짜리 병당 3~4천원). 이것도 없다? 말린 고추라도 있으면 부수어 식초에 담가 부드럽게 해서 넣어도 먹을 만하다.
라임즙이나 레몬즙(역시 요즘 철에는 인터넷이나 마트에서 생 라임을 구할 수 있다. 급히 만드느라 구할 수 없다면 와인식초 같은 과일식초를 권한다) 적당량
설탕 1작은술
옵션: 타이바질, 고수 등 허브(인터넷에서 생 타이 바질을 판다), 마늘 다진 것 1작은술
1. 멜론은 속을 파서 체에 놓는다. 단맛의 즙이 나오도록 숟가락으로 눌러서 내린다. 보통 2~3숟가락분의 즙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설탕을 한큰술 섞는다.
2. 멜론 과육을 칼로 발라내어 가급적 솜땀처럼 길게 길게 저민다. 주방타올로 물기를 닦는다.
3. 원래는 절구에 고추와 허브를 넣고 찧어야 제맛이다. 절구가 없을 때는 그냥 도마에서 칼로 다지되, 거칠게 다져라.
4. 모든 재료를 버무리고 라임주스나 레몬즙, 식초 등을 넣어가면서 간을 본다. 피시소스도 한 번에 넣지 말고 절반씩 간을 보면서 넣는다. 짭짤해야 제맛!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게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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