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재생하고 또 재생하겠다

윤희솔 대전신흥초등학교 수석교사 2023. 6. 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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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더는 못 보겠어.'

나의 수업 동영상을 보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수석교사가 되고 나서는 '내 수업'에 열중한 탓에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수업 동영상을 재생하면서 수석교사로서의 나도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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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수업소감 중 "글쓰기가 어려워는데 수석선생님이랑 공부를 하니까 글씨 쓰기가 헐씬 시워젓다. 나도 혼자 쓸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사진=윤희솔 수석교사 제공
윤희솔 대전신흥초등학교 수석교사

'아, 더는 못 보겠어.'

나의 수업 동영상을 보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나는 수석교사다운 수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재생 버튼을 누를 엄두가 안 나서 머뭇거리다 수업 시간이 됐다. 일단 수업을 다녀오자. 3학년 글쓰기 프로젝트 마지막 수업을 할 차례였다.

수석교사의 수업 지원 방법은 학교마다 다르다.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정보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기초·기본 교육이 중요하다는 교장·교감 선생님의 교육철학과 선생님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하고 싶은 활동이 많았지만, 모든 학급을 지원해야 하기에 한 학급 당 네 번밖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욕심을 덜고 또 덜어 아이들이 '나도 글을 쓰고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목표 딱 하나만 남겼다.

수업 중에도 동영상 속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수석교사로서의 삶이 동영상과 함께 멈춘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기도 힘들어서 방황하던 시선이 아이들의 수업 소감에 꽂혔다.

"글쓰기가 어려워는데 수석선생님이랑 공부를 하니까 글씨 쓰기가 헐씬 시워젓다. 나도 혼자 쓸 수 있다."

아이들의 글을 꼬박 기다리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을 사랑하는 열렬한 독자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글을 완성하길 진심으로 응원하며 글쓰기 수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수석교사가 되고 나서는 '내 수업'에 열중한 탓에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이런 못난 나에게 아이들은 "수석선생님과 더 공부하고 싶다"고 글을 써서 내밀었다. 눈물이 났다. 수업 동영상을 마주할 용기도 났다.

수업 동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봤다. 이번엔 아이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제야 글을 완성하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엉성한 '내 수업'의 빈틈을 아이들이 꽉 채워 수업 목표를 오롯이 이루어냈다. 수업 동영상을 재생하면서 수석교사로서의 나도 다시 살아났다. 말 그대로 '재생(再生)'이다.

일상에 파묻혀 멈칫대는 날이 또 올 거다. 그럴 때마다 오늘의 기억을 재생해내겠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수업으로 나를 소진하지 않겠다. 아이들의 배움을 채우는 수업의 길로 걷겠다. 현실에서 수없이 꺾여도 재생하고 또 재생하겠다. 결국엔 살려내겠다. 나와 아이들의 삶과 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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