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족적(足跡)
인간, 상처투성이 발 때문 존재
발자취가 곧 역사…어떤 족적을
'족적(足跡)'의 사전적 의미는 발로 밟고 지나갈 때 남는 흔적, 혹은 지나온 과거의 역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인간에 비유하면 자신의 걸어온 발자취다.
발은 늘 행동한다. 가만히 있질 않는다. 대화 중에도 감동적 혹은 충격적 장면이나 일을 겪을 때 흔히 '발(가락) 끝에서부터 전율이 온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발은 사전적 의미에서 나아가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래 전 TV 프로그램에서 본 감동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양팔 없는 젊은 '발가락 피아니스트' 류 웨이 얘기다. 이 청년이 두 발끝으로 연주한 피아노 하모니는 보는 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 줬다.
열 살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불행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다잡은 건 어머니였다.
"지금 우리 둘이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 상황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살기로 했고,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게 백번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너는 남과 다르지 않다'는 말을 들려줬다.
퇴원 후 재활훈련을 하면서 2개월 후에는 발가락으로 밥을 먹고, 6개월 후에는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 재활센터에서 수중 치료를 하는 2년간 마구잡이식으로 수영을 배워 정식 선수 자격을 얻었다. 열네 살이던 2002년 전국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또 한 번 좌절을 겪었다. 올림픽을 2년 앞둔 2006년 열아홉 살 때 원인 모를 악성 홍반이 온몸에 퍼져 선수 생활마저 접어야 했다.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음악으로 눈을 돌렸다. 하루 7시간씩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며 자신만의 독특한 피아노 연주법을 개발했고, 작곡도 독학했다.
'사즉생'(死卽生)이라고 했던가. 이 청년은 죽기를 각오하고 사즉생을 선택해 죽을 힘을 다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4년 만에 천상의 화음을 들려줬다. 피아노 연주란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두 손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1-2년 사이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어려운 법인데, 발끝으로 연주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2010년 10월 10일 열린 중국 최대 오디션 프로그램 '차이나 갓 탤런트' 결승전에서 '꿈속의 웨딩'을 연주해 심사위원과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최종 우승을 했다. 13억 인구를 넘어 전세계를 감동시킨 자신만의 연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의 대상 수상 소감은 이랬다.
"적어도 저는 두 발이 있습니다. 저는 인생에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거나 멋지게 살거나. 나는 멋지게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인터뷰 중 자신의 낙천적인 자세에 대해 "선천적인 것보다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아나 처음 하는 일이 '족적'을 만드는 것이다. 한때 신생아의 발도장을 액자로 만드는게 유행이었던 적도 있다. 내 존재를 알리는 첫 신고식인 셈이다.
그리고 10년, 20년, 30년, 40년…. 내 삶의 족적을 모아 놓은 '이력서'(履歷書)를 만든다. 한자로는 신발 이(履), 다닐 역(력,歷), 기록 서(書)다. 신발을 신고 다닌 기록이라는 얘기다.
어느 학자는 "지금의 나는, 우리 모두는 수 천번 생각하고, 수 만번 행동하며 발버둥 친 상처투성이의 발 때문에 존재한다"고 했다.
세상에 박세리 선수 같은 족적도, 이병철 회장 같은 족적도, 박정희 대통령 같은 족적도 존재한다. 저마다의 족적은 삶의 존재,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다. 그만 걷고 싶을 때도 있다. 정상까지 가기 힘들어 중도에 하산하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도 생긴다. 그럴 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어떨까. 비틀비틀 걸어 온 발자취가 보이는지.
예전 모 기업이 진행했던 한 CEO 콘텐츠공모전의 수상작이 떠오른다.
"당신의 발자취(足跡)가 곧 우리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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