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감독 ‘쉴드’ 위한 기자회견 라방 생중계? 협회 “팬들과 소통 위한 순수한 의도”

남정훈 2023. 6. 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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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던가.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매사에 때와 장소를 가려 행동하라는 뜻이다.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거듭된 졸전으로 10연패에 빠진 여자배구 대표팀. 이들을 관장하는 대한배구협회가 기자단과는 사전 조율이나 협의 없이 29일 도미니카 공화국전을 마치고 열린 기자회견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라방)으로 생중계했다. 갑작스런 라방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29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 한국 세사르 곤살레스 감독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연은 이랬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29일 서수원 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VNL 3주차 두 번째 경기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 상대에게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세트스코어 0-3(18-25 18-25 15-25)으로 완패했다.

튀르키예에서 열렸던 1주차 4경기 전패, 브라질에서의 2주차 4경기 역시 전패를 당했던 한국은 수원 홈에서 열린 2경기도 연패하며 2023 VNL에서 10전 전패를 당했다. 10경기에서 서른 세트를 내주는 과정에서 따낸 세트는 단 두 세트에 불과하다. 김연경(흥국생명), 양효진(현대건설) 등 기존 국가대표 주축 선수들의 대표팀 은퇴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민망한 성적표다.

‘세자르호’의 VNL 연전연패는 올해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해에도 12전 전패를 당했다. 2023 VNL의 남은 두 경기도 강호인 중국(세계랭킹 5위, 2023 VNL 6승3패), 폴란드(세계랭킹 8위, 2023 VNL 8승2패)와의 경기라 사실상 2년 연속 VNL 전패가 확정됐다.

경기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대한배구협회로부터 공지사항이 하나 전달됐다. 세자르 감독과 선수들의 기자회견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으로 생중계하겠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통보에 이날 서수원 칠보체육관에서 취재를 온 기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대한배구협회의 의도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지난 27일 불가리아전 1-3 패배 후 취재진은 연일 세자르 감독의 태도를 꼬집는 기사를 쏟아냈다. 세자르 감독이 “내 전술엔 문제가 없다. 선수들이 국제대회 수준의 맥락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게 부족하다”며 선수 탓을 내놓는가 하면 클럽팀과 대표팀 겸직으로 인한 업무 소홀 지적에는 “다른 대표팀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겨울 시즌에는 구단 소속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대표팀을 지도한다. 오히려 나에게 불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구단”이라며 적반하장식으로 나왔기 때문. 기사의 결론 중 일부는 대한배구협회가 극악의 성적을 내고 있는 세자르 감독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29일 경기도 수원 권선구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 세트스코어 3-0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배구협회로서는 이러한 취재진들의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선 극악의 성적에도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는 여자배구 팬들의 ‘팬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팬들의 세자르 감독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수 있다.

라이브 방송으로 인해 어정쩡하게 진행된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한배구협회측에 갑작스런 기자회견의 라이브방송을 통한 생중계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대한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협회 직원들 사이에서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기자회견을 생중계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갑작스레 결정하게 됐다. 세자르 감독을 옹호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의도는 결단코 없다. 정말 팬들과의 소통을 위한 순수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기자단 간사를 통하거나 현장에 취재온 취재진들에겐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아무런 협의 과정이 없었던 갑작스러운 라이브 방송 감행이 경기 이후의 세자르 감독과 우리 선수들을 보고싶어 하는 팬들의 요구나 소통을 위한 순수한 의도였을 수 있다. 그랬다면 왜 튀르키예나 브라질에서 진행된 8경기에는 기자회견을 생중계하지 않았을까. 아니 지난 불가리아전은 왜 하지 않았나. 세자르 감독의 비난 여론이 집중된 후의 첫 경기인 도미니카 공화국전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갑작스럽게 라이브 방송으로 생중계 했기에 취재진들 사이에는 강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배구협회가 의도했든 아니든 세자르 감독을 여전히 지지하는 팬들은 이번 라이브 방송을 통해 세자르 감독에 대한 비판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게 됐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라방 해주니 기레기(기자+쓰레기, 기자들의 멸칭)들이 지들 맘대로 쓰는 가짜뉴스에 안 낚이고 얼마나 좋아’라는 내용의 게시글도 있었고, ‘배구 기레기들이 너무 인터뷰 왜곡하니까 라방해주네’라는 제목을 글도 올라왔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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