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게 살해된 소년, 다시 시작된 반란
6월27일 프랑스 파리 외곽의 낭테르에서 차량을 운전하다가 교통 단속을 피해 달아났던 17세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날부터 파리 인근을 중심으로 프랑스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 내무부는 수천 명의 시위 대처 인력을 동원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시도 중이다. 그러나 6월29일 현재까지는 살해된 소년과 관련된 분노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교통 검문에 응하지 않자 발포
나엘(Nahel M)이라고 불렸던 이 알제리계 프랑스 소년은 교통 검문을 시행 중이던 경찰의 정지 명령에 응하지 않고 차량을 계속 운전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았다. 이 경찰관은 당초 나엘이 차량을 자신에게 돌진시켜왔기에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곧이어 나엘이 총격당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 이 동영상엔 한 경찰관이 멀어져가는 나엘의 차량에 총을 겨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던 경찰관은 과실치사(voluntary manslaughter)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후에 소년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프랑스 곳곳에서 불을 뿜었다. 소년이 사망한 낭테르에서는 시위대가 검은 옷과 복면을 착용하고 경찰을 향해 폭죽을 발사했다. 차량들과 쓰레기통이 불타올랐다. 공공시설에 대한 공격도 이뤄졌다. 군중들은 진화에 나선 소방관들에게 돌을 던졌다. 군중들은 낭테르뿐 아니라 툴루즈, 릴, 아미엥, 디종, 렌 등의 지역에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교통 단속에 응하지 않고 계속 차량을 운행한 운전자가 경찰의 발포로 살해된 사건이 올해 들어 세 번째다. 지난해는 13건이었으니 “감소 추세”라고, 프랑스 경찰 대변인은 BBC에 말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017년 이후 동종 사건의 희생자 대다수는 아프리카계나 아랍계였다.
“젊은이의 죽음은 정당화될 수 없다”
프랑스 정부는 발 빠르게 유족과 시민들을 달래고 회유하기에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유족에 대한 위로와 지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며 “정의를 실현하려면 차분해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10대가 살해당했다. 설명도 변명도 불가능한 사태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젊은이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동영상에 “경찰의 명백한 규칙 위반을 보여주는 충격적 장면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 역시 “우리가 동영상에서 본 경찰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5년 ‘방리유 반란’에서 얻은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방리유는 아랍계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와 2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파리 외곽의 소외지역이다. 2005년 11월, 경찰에 쫓기던 청소년 2명이 변전소로 피신했다가 감전사한 뒤 수주에 걸친 폭동이 방리유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이후 대통령)은 방리유 지역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방리유의 시위대를 인간쓰레기, 약탈자 등으로 부르며 “소방용 고압 호스로 쓸어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분노한 군중들은 자동차와 공공시설에 불을 지르며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마크롱 정부는 이번 사태가 제2의 방리유 반란으로 격화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극도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판 일베?
프랑스 경찰은 좀 다른 분위기다. 경찰 노조들은, 소년을 쏜 경찰관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 ‘경찰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적 개입 반대’ 등을 주장하며 마크롱 정부에게 거센 항의를 퍼붓고 있다. 심지어 경찰 지원 비영리 단체인 ‘프랑스 경찰(France Police)’은 트위터를 통해, “젊은 범죄자에게 총을 쏜” 경찰관들에게 “브라보”를 외치며, 나엘의 부모에게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라고 조롱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이 단체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 “10대에 대한 살인을 정당화하는,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내용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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