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급 15명 인선 배경 인사청문서 야권에 주도권 상실 우려 정치적 타협보다 소신대로 단행 평가 여권, 정부 관료들 비협조 심각 인식 대통령실 비서관 투입해 경고 분석도 외부 차관 투입 부처들 분위기 뒤숭숭 신임 국정기획비서관에 강명구 내정 尹정부 ‘신통일미래구상’ 밑그림 그려와 대통령실 “일관성 있는 통일전략 적임자” 권익위장 내정 김홍일 “조직 안정 최우선” ‘역도 전설’에서 스포츠 행정 수장 발탁 국대출신으로 세번째… “현장·이론 겸비”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장·차관 인사는 정치적 타협보다는 소신대로 돌진하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개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적으론 장관 교체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국회 인사청문회 정국이 열려 야권에 주도권을 뺏기거나 장관 후보자 임명을 놓고 야권과 ‘밀당’해야 하는 상황을 경계하며, 장관 대신 ‘실세 차관’을 통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밀실에서 일부를 내주고 다른 일부를 받아 내는 정치적 기술을 야합으로 보는 윤 대통령의 시각이 반영된 강공법이라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를 내각에 전진 배치한 이번 인사를 통해 개혁 과제 이행에 고삐를 쥘 전망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장관급인 통일부 장관 및 권익위원장과 함께 11개 부처 12명의 차관 교체 인사를 발표했다. 이 중 절반가량인 5명이 1기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표 국정운영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는 장관 교체가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대통령실 참모를 대거 내려보낸 대안 조치로, 일부 부처에선 장관보다 차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부처 간 공조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대통령실에선 기대하고 있다.
여권에는 문재인정부 때 주요 역할을 했던 관료들의 비협조적 태도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기조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부 부처에 내부 발탁이 아닌 현 정권과 가까운 정무직 비서관을 투입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차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비서관들을 만나 “공직사회에 나아가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며 “부당하고 불법적인 카르텔을 깨고 공정하고 상식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부패한 이권 카르텔을 외면하거나 손잡는 공직자들은 가차 없이 엄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차관으로 발탁된 비서관 상당수는 내년 4월 총선 출마가 거론됐던 인물들이다. 부처로 자리를 옮겨 뚜렷한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야 선거 출마 명분을 얻을 수 있어 더욱 분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 후임으로는 강명구 부속실 선임행정관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차관이 투입된 부처들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특히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통일부 장·차관에 외부 인사가 기용된 것은 ‘부처 역할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 내정자는 외시 22기로 공직에 입문한 외교관 출신이다. 이번 인사는 통일부 업무가 남북관계보다는 북핵, 인권 등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더 방점이 찍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신임 차관으로 한훈 현 통계청장이 임명되면서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이 각 부처 요직을 차지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감지된다. 내부에선 “차관 자리까지 기재부에 뺏겼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인사를 두고 깜짝 인사라는 반응이 나온다. ‘주 최대 69시간 유연화’의 근로시간 개편안 이후 노동개혁의 추진 동력이 한풀 꺾였다는 평가 속에 신임 차관이 고용부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임상준 국정과제비서관의 차관행이 결정된 환경부도 차관은 주로 내부 출신 인사들이 맡아 온 점에서 조직 사기 진작과 내부 승진 적체 등에 대한 우려가 감지된다. 특히 환경부는 대통령실이 산업부와 함께 전 정부 인사들의 농단과 복지부동이 심각한 부처로 지목했던 곳인 만큼 이번 인사를 통해 조직 내 긴장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영주 외교부 2차관 내정자는 외무고시 22회로 첫 여성 외교부 차관이다. 비고시 출신 장관으로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있지만 외시 출신 여성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진출했다.
◆김영호 “원칙 갖고 북핵 해결 최선”
29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호(64) 후보자는 “원칙을 갖고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온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뒤를 잇게 된 김홍일(67) 권익위원장 내정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흔들리는 권익위를 빨리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김영호 후보자는 이날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장관 지명을 받아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방안을 만들기 위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남북회담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통일관 논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청문회 과정에서 말씀드리겠다”며 “앞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5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명박(MB)정부 시절인 2011∼2012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해 ‘MB맨’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올해 통일부 통일미래기획위원장을 맡아 윤석열정부의 ‘신(新)통일미래구상’ 밑그림을 그려 왔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앞으로 통일부 장관 임명 시 원칙 있는 대북정책, 일관성 있는 통일 전략을 추진해 나갈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김홍일 내정자는 “어려운 시기에 권익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권익위원장은 국무총리 직속의 장관급 기관장이지만 청문회 대상은 아니다.
195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그는 예산고, 충남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15기) 수료 후 검사로 임용돼 28년간 근무하며 ‘강력통’이자 ‘특수통’으로 잔뼈가 굵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이 연수원 동기생이다. 검찰 출신 권익위원장 탄생은 박근혜정부 당시 성영훈 전 위원장 이후 6년 만이다. 김 실장은 김 내정자에 대해 “법 이론에 해박하고 실무 경험이 풍부한 정통 법조인”이라고 설명했다.
◆장미란 “페어플레이 정신, 공정·상식과 통해”
장미란(39)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장·차관 인사에서 깜짝 발탁으로 눈길을 끈다. 세계 역도의 전설인 장 차관은 2013년 박종길(사격), 2019년 최윤희(수영)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국가대표 체육인 출신의 문체부 2차관이 돼 한국 체육 행정을 책임지게 됐다.
강원 원주 출신으로 고려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장 차관은 다소 늦은 중학교 3학년 때 역도에 입문했지만 곧바로 전국을 제패했다. 이후 세계역도선수권 4연패(2005, 2006, 2007, 2009년)를 이뤘고, 올림픽에서는 금(2008년 베이징), 은(2004년 아테네), 동(2012년 런던)메달을 모두 손에 넣었다. 2013년 바벨을 내려놓은 장 차관은 2012년 장미란재단을 설립해 후배 양성과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을 펼쳤고, 2016년에는 용인대 체육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랜드슬램으로 금메달을 다 딴 현장 경험이 있고, 대학 교수도 하고 장미란재단을 통해 후학도 육성했다”며 “현장과 이론을 겸비했다”고 소개했다. 장 차관은 “스포츠 현장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은 공정·상식과 일맥상통한다”며 “윤석열정부의 국정 철학이 스포츠와 관광 정책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