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갑차 몰고, 억대 연봉까지…나라도 뒤엎는 용병산업 실체는 [박수찬의 軍]
군인은 아닌데 군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군대가 아니지만 일정한 계급과 조직이 있고, 전차·장갑차·헬기 등 중화기를 운용한다.
그 결과 최근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무장반란을 일으킨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바그너(Wagner) 그룹처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민군 관계와 문민 우위 개념을 바꿔야 할 정도로 PMC의 힘이 커졌다는 의미다.
◆군대보다 효율적이고 대우도 좋다
PMC의 성장은 탈냉전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냉전 시절 세계 각국은 대규모 군대를 우지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각국에선 대대적인 군축이 시작됐고,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갖춘 군인들이 대거 전역해야 했다.
군복무 외의 사회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구직도 민간적응도 쉽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군사 분야로 되돌아가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 러시아 근로자 평균 임금의 4배인 월 24만루블(약 400만원)을 준다고 홍보했다. ‘회사원’이지만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는 대가다.
넘쳐나는 무기는 PMC에 또다른 기회를 준다. 러시아 군사규격에서 벗어나려는 동유럽, 정부가 무너져 내전에 빠진 아프리카 등에서는 막대한 무기가 시장에 방출됐다. PMC는 이를 헐값에 사들여 소유하고, 때로는 대여 업체에서 일정 기간 빌리기도 한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PMC는 1990년대부터 보안분야를 시작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이때 러시아에선 전직 특수부대원이나 KGB 요원 등이 참여한 보안 관련 PMC가 1만개에 달했다.
1990년대 앙골라 내전 당시 우크라이나 PMC들은 석유 채굴권을 받는 대가로 앙골라 정부에 미그-21, 27 전투기와 MI-24 공격헬기로 구성된 소규모 공군을 제공했다.
과거에는 우수한 군대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하지만 PMC와 계약하면 이슬람 테러조직을 소탕하거나 중국 해커의 사이버공격을 저지하는 첨단 군대를 몇 주 만에 확보할 수 있다. 대군을 유지하는 대가가 없어도 순간적인 위기대응이 가능한 셈이다.
이를 통해 PMC는 특정 국가나 지역 정세를 단기간 내 극적으로 바꾼다.
PMC의 원조격인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Executive Outcomes)가 대표적이다. 1989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군을 떠난 전직 남아공 특수전부대원들이 창설된 이 회사는 1990년대 앙골라와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반군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붙여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PMC는 우수한 전투인력이나 엔지니어만 확보해도 운영이 가능하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고, 경쟁은 치열하다. 고객은 믿을 수 있는 회사를 원한다. 따라서 기업 브랜드와 명성이 시장에서의 지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2014년 창설 이래 바그너그룹의 행보는 이같은 상황에 부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무능함을 드러내자 바그너그룹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바흐무트를 함락시켰고, 프리고진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며 러시아군을 비판했다.
이는 바그너그룹이 뛰어난 조직이라는 점을 부각, 명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2014년 크림반도 점령 이후 아프리카 등에서 쌓은 명성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해지면서 바그너그룹은 체첸 등 러시아 내 다른 무장조직보다 더 높은 명성을 얻었다.
PMC는 정부로서는 유용한 존재다. 안보협력협정을 맺지 않고도 제3국에 군사지원을 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비밀작전을 외주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미국 등의 PMC 요원들이 현지에서 군사훈련 등을 실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문제도 있다. 정부나 군 당국이 PMC를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법인을 통제하는 방법은 법적 규제와 감시다. 이를 통해 PMC의 불법 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사법당국을 통해 기소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PMC가 대응책을 마련하면 규제는 무력화된다. 채용 등의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본사를 바하마 등 조세 피난처에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를 폐업하고 다른 나라로 옮기거나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남아공의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는 정부 규제 등이 문제가 되자 본부를 없애고 국외에 있는 복수의 회사로 모습을 바꿨다.
미국 블랙워터는 2007년 이라크에서 민간인 14명을 살해해 비판이 커지자 회사 이름을 지(Xe) 서비스로 바꿨고, 2011년 아카데미로 또 변경했다.
PMC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정부에 총부리를 겨누는 것은 민군 관계와 문민 우위를 흔들 수 있다.
군대는 병사들이 탈영하거나 불복종하면 군법으로 징계한다. 하지만 PMC 직원이 근무지를 이탈하면, 외주를 맡긴 정부가 이를 막을 강제력이 없다.
바그너그룹 반란 직후 러시아 정부가 용병들에게 벨라루스로 가거나 귀향 또는 러시아군과 계약을 제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PMC가 계약을 파기할 경우 정부는 큰 위협에 처할 수 있다. 1995년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정부가 곤경에 처한 것은 PMC인 구르카경비그룹의 계약 파기와 철수가 원인이었다. 정부는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와 재계약해 위기를 넘겼지만,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뒤였다.
PMC가 최저입찰로 수주를 한 뒤 비용 초과를 이유로 정부를 닦달해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서비스를 즉각 대체할 수 없으므로, 견적서대로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의 행동도 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은 “프리고진이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촘참모장을 기습할 계획이었으나 정보 유출로 실패, 용병들을 모스크바로 보냈다”고 전했다.
자신을 고용한 정부나 군이 PMC를 통제하려 하거나 향후 행보가 불투명하면 PMC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사보타주를 할 수 있다. PMC는 책임과 의무를 따르는 공공기관이 아닌, 이익이 최우선인 법인이기 때문이다.
프리고진의 반란은 바그너그룹에 대한 러시아군의 통제 강화 시도 직후에 이뤄졌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모든 자원 부대는 국방부 장관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7월1일까지 서명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를 두고 러시아군의 통제를 거부해온 바그너그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나마 바그너그룹은 본사가 러시아에 있어 푸틴 정권이 바그너그룹 해외 사업과 중화기 등을 접수할 수 있지만, 본사가 다른 곳에 있으면 그나마도 불가능하다. 자체 정보기관이나 또다른 PMC를 통한 방첩활동 외에는 사전 대응이 어렵다.
PMC의 등장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PMC가 전통적인 정치 및 군사적 개념을 흔들고 있는데도, 대책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현실적이지만 딜레마도 큰 PMC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가지 부명한 것은 아웃소싱에 의존하기에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하고 심각한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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