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탄소 다이어트’…제품별 배출량 파악 필수
[ESG 리뷰]
기업들이 지구에 찍힌 탄소 발자국을 지우고 있다.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은 개인이나 기업 등이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의미한다. 기후 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줄이기 위한 취지로 2006년 영국 의회 과학기술처(POST)가 제안한 개념으로, 제품 하나를 생산하기 위한 원료 채취·유통·생산·판매·사용·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빗댄 용어다. 제품의 생애 주기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무게 단위인 kg이나 광합성을 통해 상쇄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양을 나무 수로 환산해 표기한다.
탄소 발자국은 제품 생산이나 시스템의 모든 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전과정평가(LCA)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흔히 LCA와 탄소 발자국을 혼용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LCA가 좀 더 넓은 개념이다. LCA는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에너지·대기·토양 등 환경에 대한 기업이나 개인의 영향을 평가한다. 이를 통해 산출된 결과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수치화한 것이 탄소 발자국이다.
허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은 “탄소 발자국은 탄소 배출에 대한 데이터만 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환경 영향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탄소는 줄였지만 산성화, 에너지 사용량 증가가 나타날 수도 있어 탄소 발자국 인증이 모든 환경적 영향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인증 취득부터 자체 시스템 구축까지
기업들은 탄소 발자국 인증을 탄소 감축을 입증하는 일종의 ‘라벨’로 활용하고 있다. 탄소 발자국 인증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환경 성적을 나타내는 인증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에는 자발적 영역이던 인증이 글로벌 규제에 포함되면서 기업의 대응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시작된 규제 바람이 거세다. EU의 핵심 원자재법(CRMA) 초안에 핵심 원자재 판매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 발자국 정보를 요구하는 방안이 포함됐고 이후 산업 및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공정을 공시하는 세부안도 논의됐다. 최종적으로는 공급망 데이터를 담은 EU 배터리 여권 시스템을 2024년 의무화하기로 해 배터리 기업의 탄소 발자국 공시가 불가피하게 됐다.
관련 기업들은 국내외 인증 기관에서 제품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거나 자체적으로 LCA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는 등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대표적 인증으로는 해외는 영국 비영리 기구 ‘카본 트러스트’의 탄소 발자국 인증, 한국에는 환경성적표지 인증이 있다. 카본 트러스트는 2001년부터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 저감, 패키지 탄소 저감, 탄소 중립 등 다양한 인증을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2021년 네오(Neo) QLED로 4K 이상 해상도를 지닌 TV 최초로 카본 트러스트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QLED·크리스털 UHD·라이프스타일 TV를 포함한 TV 11개 모델과 모니터·사이니지 5개 모델까지 총 16개 모델에 대해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네도 QLED 6개 신제품의 탄소 발자국-탄소 저감 인증을 확보했다. 탄소 저감 인증은 전년 동급 모델 대비 탄소 배출량을 줄인 제품에만 수여한다. 삼성전자 측은 “올해 총 20개 이상 모델에 대한 탄소 발자국 인증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고 5월 기준 9개 인증을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한국 업계 최초로 반도체 사업에 대한 LCA 제삼자 검증도 완료했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해 배터리 소재 업계 최초로 양·음극재 환경성적표지를 획득하고 이를 공개했다. 지난해 기준 PN8 양극재 1kg 생산 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은 25.9kg·CO₂다. 60KWh 용량 전기차 한 대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020kg·CO₂ 정도다.
현재 많은 기업이 카본 트러스트 인증과 한국 환경성적표지에 주목하지만 업종과 거래 기업에 따라 필요한 인증이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부터 제품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자국을 추적하는 자체 시스템 ‘SK LCA 인프라’를 개발해 실제 업무에 반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에서 생산하는 에너지·화학제품의 원유 채굴 단계에서 사용, 폐기 단계까지 전 과정 온실가스 배출량을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측정하고 모니터링한다. SK LCA 인프라는 글로벌 온실가스 검증 기관 로이드인증원의 제품 탄소 발자국 산정 관련 인증도 받았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3월 단체 급식 메뉴에서 탄소 발자국을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한 끼 식사 시 약 1.9kg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데이터를 확보했고 이를 줄이기 위한 저탄소 메뉴를 마련할 예정이다.
조선업계, 탄소 발자국 원팀 구성
업계의 공동 대응 움직임도 있다. HD현대는 한국 조선사 및 선급과 함께 지난 3월 탄소 발자국 원팀을 만들었다. 조선업계의 스코프 3(공급망을 포함한 총외부 배출량) 산정 표준화를 위한 공동 개발 프로젝트다. 각 사별로 스코프 3 배출량 산정 방법을 공유해 조선업계에서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CJ ENM 역시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에코 콘텐츠 프로덕션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고 제작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탄소 발자국 계산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모든 제품이 탄소 발자국 라벨을 지닌 패션 브랜드 올버즈 역시 탄소 발자국 계산 키트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업계 차원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탄소 발자국 인증은 탄소 감축의 시작일 뿐이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어디서 얼마나 탄소가 배출되는지 파악했다면 다음 단계는 본격적인 감축 전략 수립이다. 탄소 회계 전문 스타트업 탄소중립연구원의 이민 대표는 “기업의 탄소 중립 노력은 결국 제품 단위까지 내려올 것이다. 제품의 전 과정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배출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라며 “LCA를 통해 제품 생산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공정·연료·에너지 등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 인증 목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EU 차원에서는 이미 제품 환경 발자국(PEF : Product Environmental Footprint)이라는 기준을 수립하고 자사 제품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기후변화, 물 관리, 토지 사용 등 16가지 항목에 대한 제품군 가이드”라며 “앞으로 어떤 것이 인증 대상이 될지에 대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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