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맥주의 왕자가 권좌에서 내려온 이유

여론독자부 2023. 6.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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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소비자 보이콧'은 자유이자 권리
잘나가던 맥주 판매 급감했지만
정치인 공권력 이용 기업 압박땐
명백한 독재주의 오점 기록될것
[서울경제]

수십 년간 대기업의 ‘정치적 올바름(PC·언어나 행동이 특정 그룹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원칙)’에 불만을 터뜨리던 보수적 소비자들이 이제는 아예 기업의 경영 정책 자체를 바로잡고 싶어한다. 한때 ‘맥주의 왕자’였던 버드라이트가 권좌에서 끌려내려온 것이 좋은 예다.

버드라이트는 20여 년간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로 군림했다. 그러나 한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 포스트에 이성을 잃은 보수주의자들이 공격하자 버드라이트의 위상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버드라이트는 여러 명의 인플루언서에게 개인 맞춤형 캔맥주를 보냈다.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판촉 활동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한 명이 트랜스젠더인 것이 문제가 됐다. 그가 새로운 캔맥주를 극찬하는 포스트를 올리자 마치 기다리기나 한 듯 우파 진영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버드라이트 때리기’에 나선 보수적 인사들 가운데 키드 록이 버드라이트 캔을 사격 연습용 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다른 유명 인사들과 그들의 팔로어들도 버드라이트를 기피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버드라이트의 6월 첫 주 판매는 전년 동기에 비해 거의 25% 급감했다.

진보주의자들이 동성 결혼 혹은 낙태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기업들이 보다 진보적인 자세를 취해줄 것을 요구할 때마다 보수 진영은 비판 공세를 벌였다. 이를 감안하면 버드라이트를 겨냥한 보수주의자들의 행동은 영락없는 위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펼치는 이 같은 소비자 행동주의에 전혀 반감을 갖고 있지 않다.

우파가 이미 매입한 고가의 커피 메이커를 창밖으로 집어 던진다거나, 인기 있는 운동화에 불을 붙여 태우거나, 아침 식사 대용품인 시리얼을 변기 속에 처박는 행위는 필자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자신의 소유인 가전제품이나 의복, 또는 집 안의 배관 시설을 망가뜨리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이자 권리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진보주의자들이 안티 성적 소수자(LGBT) 단체와 인종 혐오 단체에 기부금을 낸 것으로 밝혀진 치킨 샌드위치 체인 ‘칙필레(Chick-Fill-A)’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펼치는 것 역시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제도를 망가뜨리려 시도한 정치인들에게 기부금을 주지 말라며 기업들에 압박을 가한 진보주의자들에게 필자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물론 기업들은 이런 형태의 ‘자본주의 처벌’을 싫어한다. 역사적으로 소비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기업들은 분열적인 문화 전쟁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여기에 휘말릴 경우 소외감을 느낀 일부 구매자들이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친사회정의 운동, 혹은 반사회정의 운동 진영에 속한 듯 비치는 것을 꺼린다. 소비자 기반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어느 쪽에도 혐오감을 주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대체로 대주주 혹은 동업자의 의사 때문이지만 고객들과 종업원들이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지난해 일부 대기업은 낙태권의 마지막 방화벽 역할을 수행했다. 낙태권을 헌법이 보장한 자유로 볼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의 돕스(Dobbs) 판결이 나온 후 대기업 수장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라 반낙태 기업으로 몰릴 경우 직원 모집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할인점 회사 ‘타깃’은 LGBT의 이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돈벌이 목적으로 이들을 위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은 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정부 관리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대기업의 사회정의 운동에 관한 담론에서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소비자 보이콧과 정부의 행위가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 최소한 두 명은 정치적 견해를 표시하는 기업들을 처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디샌티스는 미키 마우스를 없애려고 했다. 디즈니가 감히 그의 반동성애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LGBT 직원들의 압력에 마지못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물품을 구입할지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방식이다. 반면 정치인들이 공권력을 이용해 동지에게 상을 주고 적에게 벌을 주는 것은 명백한 독재주의 방식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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