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발 ‘실세 차관’ 부처 전진 배치…전문성은 ‘묻지마’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차관 인사의 특징은 ‘윤심’ 참모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인사가 이뤄진 11개 부처 차관 12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명이 대통령실 비서관들로 채워졌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를 놓고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지근거리에서 공유했던 비서관들을 각 부처로 투입해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으나,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차관’을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부처 총책임자인 장관보다 용산에서 내려온 이른바 ‘실세 차관’에게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차관 중심의 부처 운영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과 함께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란 평가가 나온다.
이날 대통령실은 다음달 3일자로 정부 부처 19개 가운데 11개 부처, 12명의 차관을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는 ‘역도 스타’인 장미란 용인대 교수(체육학)가 깜짝 기용됐고, 기획재정부 2차관에는 김완섭 기재부 예산실장,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에는 한훈 통계청장, 고용노동부 차관에는 이성희 전 청와대 노동비서관,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에는 오기웅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조정실장이 내정됐다. 외교부 2차관은 오영주 주베트남대사, 통일부 차관은 문승현 주타이(태국)대사로 교체된다.
윤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1·2차관과 환경부,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자리를 대통령실 비서관들로 채웠다. 차관직은 정무직이지만 부처 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만큼, 조직 내 인사가 발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해당 부처 경력을 가진 인사는 국토부 2차관으로 임명된 관료 출신 백원국 국토교통비서관이 유일하다. 부동산 정책 주무를 맡게 될 김오진 국토부 1차관 내정자는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으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실무를 담당한 것이 관련 이력의 전부다. 부동산 정책 경험이 없는 인사가 국토부 1차관에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이 밀어붙인 ‘용산시대’를 자리 잡게 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란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주택시장 전문가는 <한겨레>에 “부동산 정책은 안 그래도 얽히고설킨 이해와 변수가 많아 복잡한 데다 최근엔 역전세·전세사기 등 현안이 넘쳐나는데, 김 신임 1차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관료 출신이지만 총리실에서 주로 일해온 임상준 국정과제비서관을 환경부 차관으로,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지난해 부산시장 선거 국민의힘 경선에 출마했던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을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원자력 전문가로 학계에 있던 조성경 과학기술비서관은 과기정통부 1차관으로 기용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차관으로 대거 이동하게 된 배경을 두고 “과거에도 비서관들이 차관으로 나가는 것은 상당히 일반화된 코스다. 집권 2년차를 맞이해 개혁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부처에 좀 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서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성이 부족한 대통령실 출신 차관들이 부처 내 ‘실세 차관’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부처 내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은 복지부동하는 공무원 집단을 이번 인사로 흔들어 ‘일하는 부처’로 만들겠다고 설명하지만, 벌써 ‘장관 패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부처 내 뒤숭숭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아울러 이번 인사를 놓고,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라는 점에서 청문회 부담이 없는 차관 교체라는 인사청문회 우회로를 택한 ‘꼼수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장관은 결재만 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부처는 실세 차관들을 통해 대통령실의 하명을 실행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날 <한겨레>에 “국정 운영은 상대가 있는 것이고 최대한 설득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겠다는 것은 정상적인 국정 운영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다섯명의 대통령실 출신 차관 내정자들을 만나 격려하면서 ‘기득권 카르텔’을 깨달라고 주문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처리해 나가면서 약탈적인 이권카르텔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며 “공직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 부당하고 불법적인 카르텔을 깨고 공정하고 상식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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