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없는 나라는 거대한 강도떼와 다를 바 없다” [책&생각]
기독교사상-그리스철학 만남 살펴
플로티노스 “신은 충만한 일자”
오리게네스 “신도 고통받는다”
신 앞에 선 인간
중세의 위대한 유산, 철학과 종교의 첫 만남
박승찬 지음 l 21세기북스 l 2만2000원
서양 중세철학 전문가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가 쓴 <신 앞에 선 인간>은 서양 기독교 문명의 정신적 틀을 만든 초기 500년의 역사를 인물과 사상을 통해 들여다본 저작이다. 지은이는 이 시기 기독교 사상의 성숙에 큰 기여를 한 사상가로 다섯 사람을 꼽는다. 기독교를 보편 종교로 일으켜 세운 사도 바울로, 플라톤 철학을 이어받아 신플라톤주의 체계를 만든 플로티노스, 그리스 철학을 도구로 삼아 기독교 신학의 큰길을 연 오리게네스, 앞 시대 사상을 종합해 중세 신학의 거대한 구조물을 세운 아우구스티누스, 고대 로마 세계의 마지막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그들이다. 지은이의 관심은 유대 문화에서 나온 변방의 종교인 기독교가 로마 세계의 정신을 지배하던 그리스 철학과 만나 융합하는 과정을 살피는 데 있다.
기독교의 사실상 창시자라 할 사도 바울로(10?~67?)부터가 두 문화의 융합 양상을 보여준다. 바울로가 태어난 소아시아 다르소는 헬레니즘 문화의 요충지였다. 바울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자 로마제국 시민이었으며 그리스어에 능통한 교양인이었다. 동시에 바울로는 바리사이파 신학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이었다. 유대교 정통 신앙에 투철했기에 기독교라는 신흥 종파를 쳐부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던 바울로는 서른 살 무렵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충격적인 ‘계시 체험’을 한 뒤 예수의 사도로 거듭났다. 바울로는 기독교를 유대교 율법에서 해방해 만인에게 열린 평등의 종교로 바꾸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이 기독교 신앙을 그리스 사상과 연결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이 바울로가 제2차 선교여행 중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한 연설이다. 바울로는 그리스의 종교와 문학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그곳 사람들을 설득한다.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스 사상을 이용해 새로운 신앙을 알리는 바울로의 선교 방식은 기독교 신학의 미래를 앞서 보여주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주인공 플로티노스(205~270)는 플라톤 철학을 종교적 색채가 강한 신비주의적 철학으로 바꾼 사람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세계는 눈에 보이는 지상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 세계로 나뉘어 있다. 천상 세계는 이데아들의 세계이며 지상 세계는 이데아들을 모방한 세계다. 그 이데아들 가운데 최고의 이데아가 ‘선(아가톤)의 이데아’인데, 선의 이데아가 태양처럼 빛을 주어 이데아들을 키운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유출론’으로 바꾸었다. 하나(일자)라는 근원적인 존재로부터 세상 모든 것이 유출돼 나왔다는 것이 유출론이다. 일자는 스스로 충만한 신인데, 이 신에게서 정신이 흘러나오고, 정신에서 세계영혼이 흘러나오며, 세계영혼에서 이 현실의 세계가 흘러나온다. 태양의 빛이 멀어질수록 광도가 낮아지듯이,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존재의 등급이 낮아진다. 그리하여 일자-정신-영혼에 이어 가장 낮은 곳에 물질세계가 있다. 신을 닮은 인간의 영혼은 오디세우스가 오랜 방황을 거쳐 고향에 돌아가듯이 지상의 세계를 떠나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플로티노스는 이 세상의 악을 실체로 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신에게서 유출돼 나오기에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없고, 우리가 악하다고 보는 것은 선이 결핍된 것, 쉽게 말해 태양의 빛이 부족한 것일 뿐이다. 플로티노스는 이 새로운 철학으로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놓았다.
플로티노스와 거의 같은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현한 또 하나의 위대한 정신이 오리게네스(185~254)다. 오리게네스는 플로티노스와 달리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18살 때 벌써 알렉산드리아 기독교 교리학교 교장이 됐을 정도로 특출하게 명민했다. 오리게네스는 평생 2000권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다. 오리게네스 신학의 특성은 정밀한 문헌 비평에서 발견된다. 오리게네스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원본과 다섯 가지 그리스어 번역본을 묶어 편집한 뒤 서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성서를 탐구했다. 또 이런 문헌 비평에 기반을 두고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영적 의미를 밝히는 해석학적 혁신을 감행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신이 고통받는다’는 관념의 도입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신은 아무런 결핍이 없는 완전한 신이다.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신이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인간을 향한 연민 때문이다. 그분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기 전에, 아니 육화하시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고통을 몸소 끈질기게 겪으셨다.”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신이 오리게네스의 신이다.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이어받아 플로티노스의 철학과 결합한 고대 최고의 신학자가 아우구스티누스(354~430)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왜 선한 신이 창조한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평생 물었다. 이런 고뇌 속에 젊은 날 마니교의 선악 이원론을 받아들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노스의 일원론 사상, 곧 악은 악 자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일 뿐이라는 사상을 통과해 기독교도로 다시 태어났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독창성은 자유의지론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악이 선의 결핍이라 하더라도 그 악이 세상에 넘쳐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물음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준 자유의지에서 온다고 답했다.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 것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탓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가 결여된 동물보다는 잘못을 저지를지라도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더 훌륭한 존재의 단계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신이 준 자유의지를 따라 악을 극복하고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나라’에 관해 쓴 <신국론>에서 ‘땅의 나라’ 곧 현실의 나라를 매섭게 비판했다. “정의가 없는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강도떼가 다스리는 나라를 참된 나라로 만드는 일, 그것이 지상에서 신의 뜻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보았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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