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그 아파트면 해피엔딩? [책&생각]

한겨레 2023. 6. 3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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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S아파트, 내가 서른 살 때 이억오천에 팔고 나왔잖아!" A(에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때 S(에스)아파트를 팔지만 않았어도 지금 몇십 억짜리 강남 아파트 소유자가 되었을 거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어우, 나는 마포 H아파트 5억 할 때 천만원 깎으려다 못 샀잖아!" B는 그때 천만원 더 주고 H(에이치)아파트를 샀으면 지금쯤 '마용성' 금싸라기 아파트의 소유주가 되었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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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2023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수록
윤보인 지음 l 현대문학(2022)

“대치동 S아파트, 내가 서른 살 때 이억오천에 팔고 나왔잖아!” A(에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때 S(에스)아파트를 팔지만 않았어도 지금 몇십 억짜리 강남 아파트 소유자가 되었을 거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은 B(비)가 손사래를 쳤다. “어우, 나는 마포 H아파트 5억 할 때 천만원 깎으려다 못 샀잖아!” B는 그때 천만원 더 주고 H(에이치)아파트를 샀으면 지금쯤 ‘마용성’ 금싸라기 아파트의 소유주가 되었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내 마음에서도 아파트 이름 하나가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십여 년 전, 큰 빚을 내는 걸 망설이다 결국 사지 못했던, 지금은 결코 지불할 수 없는 금액에 거래되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이.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모두 이러한 아파트가 있을 것이다. ‘그때 샀어야 했던’, 혹은 ‘팔지 말았어야 했던’ 통한의 아파트가.

소설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의 주인공에게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그런 아파트이다. 그는 생활고 때문에 대학을 중퇴할 정도로 가난한 환경을 거쳐온 인물이다. 다니던 대학을 도중에 그만두고 여러 종류의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집을 사고팔아 재력을 쌓는 데 성공한다. 지금은 전국을 다니며 투자대상을 물색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좋은 가격’일 때를 놓치는 바람에,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사지 못했다. 그에게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사랑했던 옛 연인인 은주가 살았던 곳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부와 사랑. 두 가지 상징을 모두 품은 압구정의 아파트는 언제나 그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은주의 아들이다. 그는 청년을 데리고 거제로 향한다. 그곳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주겠다면서. 청년과 함께 밥을 먹는 동안, 화려한 부를 거머쥔 듯 보였던 옛 연인 은주와의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이 추억은 이내 돈이 없어 설움 받던 날들의 아픈 기억과 뒤섞인다.

많은 것을 손에 쥔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은 가난했던 예전에 비해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국 방방곡곡의 아파트보다,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압구정의 아파트가 훨씬 더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서열을 이룬 대학체계에서 ‘상위권 대학’ 입학에 성공한 이들이 그보다 더 상위권으로 자리매김된 대학을 쳐다보며 아쉬워하듯, 수십 채의 아파트를 들고 있는 주인공은 미처 차지하지 못한 강남의 아파트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아파트’라는 거주공간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을 그린 소설은 많다. 하지만 아파트를 여러 채 소유한 재력가의 내면을 따라가는 소설은 드물다. 이 소설은 타인이 보기에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력을 거머쥔 남자의 심리를 선명하게 형상화해 독자에게 던져준다. 그리고 소설을 끝까지 따라간 독자는 궁금증에 빠져들게 된다. 눈 떠보니 내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소유주가 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여생을 “매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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