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멸종’하고 있다 [책&생각]
“이대론 기후위기·질병·해충 무방비”
한국 ‘연산 오계’ 등 멸종 음식 소개
사라져 가는 음식들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
댄 살라디노 지음, 김병화 옮김 l 김영사 l 2만9800원
이보다 음식에 진심일 수는 없다. <사라져 가는 음식들>을 쓴 영국 <비비시>(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댄 살라디노는 10년 넘게 전 세계를 누비며 음식 관련 취재를 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온 세계가 먹는 것이 갈수록 똑같아지고 있으며, 세계 음식의 다양성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
언뜻 생각하면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다른 나라의 음식도 많이 접하니 사람들이 먹는 음식 역시 더 다양해졌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런던에 있든 로스앤젤레스에 있든 스시나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을 수 있”지만, 이런 다양성은 “똑같은 종류의 ‘다양성’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그는 거대한 인류사 속 ‘음식의 변천사’에 눈을 돌려, 지난 150년 동안에 일어난 음식의 변화가 그 이전의 100만년 동안 일어난 것보다 더 많다고 지적한다. 책은 음식을 둘러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다루는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버금가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인류는 그동안 식물 6천종을 먹으며 생존해왔다. 식물은 특정한 지역의 기후와 토양, 물, 고도에 맞춰 진화했고, 사람들은 그런 식물들을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산악 지대인 남부 독일 알프스 산지에서는 토양이 척박해 다른 식물은 자라지 못하지만 알브린제(알프스 렌틸)라고 알려진 재래 품종 콩과 작물은 잘 자랐고,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렌틸콩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벼와 밀을 재래종보다 생산성이 좋은 품종으로 개발한 ‘녹색 혁명’이 진행됐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농업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은 밀과 벼, 옥수수 단 3종에만 전체 칼로리의 50퍼센트를 의존하게 됐다. 알브린제 품종의 렌틸콩 역시 소출이 많은 렌틸 품종이 개발되면서 경쟁력을 잃고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음식의 균질화’는 곡물뿐 아니라 육류, 과일, 치즈 등 다양한 음식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돼지고기 생산은 단 한 품종, ‘라지화이트’라는 돼지 유전자를 근거로 이뤄지고 있다. 라지화이트 품종 돼지는 다른 품종과 달리 몸체가 길고 체중이 빨리 불어난다. 세계 치즈의 절반이 회사 한 곳에서 제조한 박테리아와 효소로 생산되고 있다. 바나나도 1500가지 이상의 품종이 있지만 ‘캐번디시’라는 품종만 거래되고 있다. 이는 무역, 기술, 기업의 권력층들이 ‘생물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무시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우선시하고 이윤만을 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책은 음식의 균질화가 왜 위험한지, 생물 다양성이 우리 삶과 어떻게 직결되는지 피부에 와닿게 설명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해본 우리는 현대적 사회 시스템이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알고 있다. 저자는 “좁은 범위의 식물 종목과 이런 극소수의 품종에만 의존하는 세계 식량 시스템은 질병, 해충, 극단적인 기후에 굴복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현대 밀의 유전자는 다른 고대 품종보다 맥류 붉은곰팡이병에 더 취약한데, 온난하고 습해지는 기후로 곰팡이가 더 잘 퍼질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곰팡이가 전 세계 밀밭에 침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또 우리 몸에는 수조 개체의 박테리아, 균류 및 다른 미생물이 살고 있는데, 장내 미생물은 인간의 면역 시스템과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면서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각종 질병을 예방해준다. 장내 미생물은 식단이 다양할수록 풍부해지므로, 식단의 다양성은 건강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또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요리하고 가공하고 발효시키며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다양한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도시화·산업화로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인류는 세계의 많은 전통적 식품 기술 문화와 오래된 지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생물 다양성 확보가 단순히 생명 존중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건강’의 문제이고 ‘문화’를 지키는 일임을 인식하게 되면, 저자가 10년 동안 찾아다닌 ‘사라지고 있는 음식들’은 인류의 ‘보물’로, 또 종자를 지키는 사람들은 인류의 ‘파수꾼’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벌꿀길잡이새와 협력해 벌꿀을 채취하는 탄자니아의 수렵채취인 하드자족을 만나기도 하고, 한국 계룡산 기슭에서 사라지고 있는 품종 닭 ‘연산 오계’를 키우는 이승숙씨도 만난다. 연산 오계는 1930~40년대 더 빨리 자라고 몸집이 큰 닭이 도입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난생 처음 듣는 음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세계 곳곳의 음식 이야기에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또 식민주의자들이 토착민들에게 돼지고기 통조림과 정제 밀가루 봉지, 농축 주스 같은 “쓰레기 음식”들을 주면서 토착민만의 고유한 음식 문화를 파괴하는 과정을 보면, “음식은 세계의 내적 작동 방식을 이해하게 해주는 완벽한 렌즈”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전쟁과 약탈로 한 지역의 음식은 바뀌고, 기업들의 이윤 추구로 인해 생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종자들은 사라지게 된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계의 권력을 누가 가졌는지 그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다.
생태학자이자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인 최재천 교수의 좌우명은 ‘알면 사랑한다’라고 한다. 이 책은 음식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주고, 그 앎으로부터 그 음식의 종자부터 그 음식을 지키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지켜보게 만든다. 생산성과 효율성, 더 높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전 지구적 식량 시스템에선 나 역시 희생자임을 자각하게 하고 ‘슬로푸드’ 운동이나 ‘생명 다양성’ 운동 등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기회를 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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