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훈·농업, 국가안보·식량안보와 직결”

홍경진 2023. 6. 3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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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민식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
나라 위해 목숨 희생한 분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예우
서울현충원, 호국보훈 성지로
국민이 즐겨찾는 공간 만들 것
농협, 보훈사업 지속 동참 든든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는 해다. 우리는 70년 동안 외침과 내전이 잦아든 평화의 시대를 살면서 폐허의 나라를 경제강국으로 재건했다.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에도 개인의 희생이 필요한데, 국가가 이만큼 세워지는 데 누군가의 희생과 기여가 없었다면 이상한 일이다.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대한민국과 그 국민은 누구를 기억하고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박민식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을 28일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만나 보훈문화에 대한 구상을 들었다.

-국가보훈부 출범의 의의는.

윤석열정부의 보훈 의지와 국민 성원에 힘입어 5일 국가보훈부가 출범했다. 1961년 군사원호청이 창설된 지 62년 만의 일이다. 보훈부 출범은 돕고 보살피는 ‘원호(援護)’의 개념에서 국가를 위한 희생을 받들고 예우하는 ‘보훈(報勳)’으로 발전한 보훈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훈부 승격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국가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분들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예우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는 데 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는 국격이 있지 않은가. 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보훈부 승격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서 그에 걸맞은 내적 가치를 갖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친께서 베트남전에서 전사하셨다. 국가유공자의 아들로서 보훈정책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 같다.

선친(박순유 중령)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내가 7살 때 전사하셨다. 당시 36살이던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홀로 6남매를 키우셨다. 그런데 어린 시절엔 뭔가 부끄러운 느낌, 죄책감 같은 것에 시달렸다고 할까. 초등학교 때 가정환경조사를 하면 ‘원호대상자’도 손을 들게 했는데, 그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국가가 미안해할 일에,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것이 내 오랜 물음이기도 했다.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이 느껴야 할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긍심’인데 말이다. 국가에 헌신한 분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일이 오랜 소명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이를 주요 의정 포인트로 삼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렇고, 정부가 ‘영웅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에 영웅이 많다. 이승만·박정희·백선엽 이런 분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내셔널 히어로(국가 영웅)’ 아닌가. 하지만 영웅을 영웅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우는커녕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을 많이 세웠는데 아픈 역사에 대한 교훈적 의미는 인정하지만 그들이 영웅은 아니다. 영웅의 동상을 더 많이 세우고 기념해야 하지 않겠나.

윤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뿐 아니라 평소에도 ‘보훈과 국방은 동전의 양면’ ‘보훈문화는 국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보훈철학이 확고하다. 이런 의지로 어느 정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보훈부 승격을 이뤄냈다. 보훈이란 ‘과거’의 희생‧헌신에 대한 추모나 보상의 의미로 그치지 않는다. 보훈문화는 국가 위기시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국가 영웅을 예우하고 존중하는 보훈문화가 국정의 핵심가치로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 보훈부 출범으로 그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지난 1년간 어떤 일을 했나. 기억에 남는 유공자‧유가족의 반응이 있다면.

지난해 5월 국가보훈처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을 모시고 5·18 기념식을 했다. 미국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에 우리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고, 윤동주 지사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200여명의 가족관계등록도 창설했다.

전몰·순직 군경의 미성년 자녀들을 지원하는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행사장에서 울음을 삼키며 감사를 표하던 유족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올해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황기환 지사의 유해를 순국 100년 만에 조국으로 모셨다.

지난해 추진한 ‘제복의 영웅들’ 캠페인은 국민들의 호응 속에 정책으로 발전했다. 올해 정전 70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 전원에게 ‘영웅의 제복’을 전해드리고 있다. 앞서 25일 ‘6·25전쟁 73주년 정부기념식’에 참석한 참전유공자들께서 “국가에서 우리를 잊지 않고 멋진 제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하시더라. 보훈부로도 감사편지와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6월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 행사를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맨 왼쪽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대통령실

-보훈부 승격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조직과 주요사업엔 어떤 변화가 있나.

정부 의전서열 톱텐(9위) 부처가 됐다. 장관으로서 국무회의에 참석한다. 보훈부 출범과 함께 ‘보훈정책실’ 신설 등 조직이 보강됐고, 국방부가 관할하던 국립서울현충원 이관이 결정돼 전국 12곳의 국립묘지를 보훈부가 통합관리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영웅들을 안장하고 추모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문화공간으로 잘 꾸며졌다. 앞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알링턴처럼 국민들이 365일 즐겨찾는 ‘대한민국 호국보훈의 성지’로 재창조할 계획이다.

용산 호국보훈공원, 낙동강 호국벨트 등 특정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부모와 아이가 연중 손잡고 방문할 수 있는 국가 상징 공간을 조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보훈정책의 싱크탱크 격인 보훈정책개발원 설립도 추진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죽산 조봉암 선생의 국가유공자 서훈 가능성을 평가했다.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과를 함께 지닌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여럿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 일이다. 죽산 조봉암은 독립운동 외에 1941년 국방헌금을 기부한 이력과 일제 침략전쟁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미포상된 바 있다. 다만 광복 이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한 공로는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조선시대는 물론 그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일반 백성이 자기 땅을 갖고 농사짓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농지 대부분을 왕과 지배계층이 차지하는 구조였던 탓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2월 농지법을 통과시켜 농민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든 주역이 이승만과 죽산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농지개혁은 말이 개혁이지 국유화 아닌가.  

농지개혁의 결과 농민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려 전쟁에도 도망가지 않고 싸우려 했다. 농지를 일궈 자식교육을 뒷바라지하겠다는 열망도 뜨거웠다. 농지개혁은 단순히 경제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교육·경제번영의 토대를 만든 사건이다.

-농협과도 협력사업을 하고 있다.

농협은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 계기로 ‘122609 태극기 배지 달기 캠페인’을 비롯한 보훈사업에 꾸준히 동참하고 있다. 매년 전국의 농협 임직원들이 국립묘지 정화활동 등 보훈 관련 자원봉사와 후원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12월 ‘제23회 보훈문화상’을 수상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께서도 얼마 전 ‘호국보훈의 달 정부포상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농협이 보훈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사업 파트너로 꾸준히 동행하고 있어 감사하고 든든하다.

-농민들은 5000만 국민의 먹거리 생산으로 호국(護國)한다.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농촌과 농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은 식량안보로 이어진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보훈’은 강한 국방력의 원동력으로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농업과 보훈은 국가의 근간이자 핵심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인 듯하다. 우리 국민의 먹거리를 위해 땀 흘리시는 농민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

보훈부는 높아진 위상만큼, 국가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영웅들을 존중하는 보훈문화가 국민의 일상이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전국의 농민 여러분께도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박민식 장관은… ▲1965년생(부산)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외무부 사무관(외무고시 22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사법시험 35회) ▲18·19대 국회의원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특별보좌역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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