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숱한 장식을 떼고 맨발의 영혼으로

관리자 2023. 6.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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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골로 귀농해 사는 분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낡은 한옥인 우리 집 거실이며 마루에 걸린 조각가 딸의 조각품들을 둘러보던 한분이 마루 한편에 있는 삼층 오동나무 장롱을 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원군의 장롱에 얽힌 이 이야기는 존재의 분열 속에 살아가는, 그래서 뒤틀어져 버린 삶을 그나마 지탱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장식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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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골로 귀농해 사는 분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낡은 한옥인 우리 집 거실이며 마루에 걸린 조각가 딸의 조각품들을 둘러보던 한분이 마루 한편에 있는 삼층 오동나무 장롱을 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장롱에 달린 장식(裝飾)이 매우 아름답다고. 그가 지목한 것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박쥐 모양의 무쇠 장식이었다. 그런데 옛날 좋은 장롱엔 본래 장식을 달 필요가 없었다며 나는 장롱에 굳이 장식을 박은 사연이 담긴 오래된 이야기 한자락을 들려줬다.

한 젊은이가 하루는 중앙박물관에 가서 고풍스러운 장롱을 보았다. 그는 장롱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슴이 아려오고 눈물이 솟구쳤다. 그는 일단 그 장롱을 사진에 담은 후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한 목공 노인을 찾아갔다. 두꺼운 돋보기를 꺼내 쓰고 젊은이가 내민 사진을 들여다본 목공 노인이 말했다.

“이건 중앙박물관에 있는 대원군의 장롱이군요!” 목공 노인은 그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젊은이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부탁했다. “어르신, 이 장롱과 똑같은 장롱을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공 노인은 정중하게 그의 청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장롱에 쓰인 나무는 300년 정도의 나이를 가진 나무로 적어도 30년 이상을 강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말리기를 반복했을 것이오.”

노인의 말을 듣고 난 젊은이는 몹시 낙담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는 얼마 뒤 30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나무를 구해 목공 노인을 찾아가 대원군의 장롱과 똑같은 장롱을 만들어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물론 만들 수는 있소. 하지만 장롱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나는 책임질 수 없소.”

몇년이 지난 뒤, 젊은이는 목공 노인이 만들어준 장롱을 자기 집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번의 여름이 지난 어느 날, 장롱이 뒤틀려 있음을 발견했다. 즉시 그는 장롱을 실어다가 노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 보시오. 나는 이미 그렇게 되리라는 짐작이 있었소.”

목공 노인은 장롱에 장식을 달아주겠다고 했다. 뒤틀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부득이 장식이 필요했던 것. 대원군의 장롱에 얽힌 이 이야기는 존재의 분열 속에 살아가는, 그래서 뒤틀어져 버린 삶을 그나마 지탱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장식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과연 오늘 우리는 현란한 장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이 숱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튼실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온전한 삶이라면 거기에 무슨 군더더기 장식 따위가 필요하겠는가.

그날 나는 귀농해서 살아가는 분들에게 칼릴 지브란의 시 한구절을 들려줬다. “대지는 그대들의 맨발의 감촉을 즐거워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텃밭으로 나가 푸성귀들과 사귈 때, 숲에 들어서 흙빛 오솔길을 걸을 때 나는 자주 신발을 벗는다고. 어둠이 내리고 하늘에 별님 눈동자만 초롱초롱할 때는 풍욕을 즐기려고 창문을 열고 거추장스러운 옷도 벗어버린다고. 그렇다. 낙원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본래 적수공권인 우리 몸에 주렁주렁 매단 문명의 장식을 떼어버리면 된다. 신은 우리가 맨발의 영혼으로 대지를 밟고, 맨살의 영혼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춤추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지 않을까.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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