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그들은 왜? "마약처럼 쾌락…열등감 보상심리"[악플러의 동굴]⑤
쾌감 느끼기 위해 더 많이 더 악랄하게…자신의 뇌에도 '흉터'
[편집자주] 악플러는 영미권에서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이라 불린다. 트롤은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대부분 동굴에 살고 있다. 트롤은 인간을 공격하지만 햇볕을 쬐면 돌이 되거나 터진다. '현실 세계' 속 트롤도 양지가 아닌 음지를 지향한다. 악플러들이 온라인에 적어 올린 글은 흉기가 돼 누군가의 삶을 위협한다. 이들은 왜 악플을 다는 걸까. <뉴스1>이 직접 만나 악플러들의 '이중생활'을 들어봤다.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낮은 자존감·인정욕구·혐오감·죄책감 없음·중독"
악플러들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악플러 가운데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악플을 끊지 못해 형사처벌을 받는 이들이 많은 이유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악플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일 <뉴스1>은 뇌 과학자, 심리학자와 함께 온라인에서 상습적으로 악플을 달고 타인을 괴롭히는 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나는 능력 있는데"…악플러 '낮은 자존감·인정욕구·혐오감'
먼저 전문가들은 악플의 동기로 '낮은 자존감과 인정 욕구'를 꼽았다.
윤신애 건국대 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는 악플러들의 동기를 '과잉 보상'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과잉 보상이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보상 기전을 가동해 우월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즉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을 타인이나 외부로 돌리고 과도하게 비난한다는 설명이다.
비난의 대상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악플러들은 자신이 능력 있는 존재임에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결함이 드러난 유명인이 인정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작은 실수에도 화를 내거나 비난함으로써 자기 영향력과 능력을 인정받으려 한다는 게 윤 교수의 진단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도 악플을 쏟아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악플은 뇌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악플에는 남을 미워하는 '혐오'의 정서가 깔려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혐오는 뇌의 △편도체 △섬엽 △조가비핵 △시상하부를 자극한다. 이 가운데 편도체는 인간의 공포를, 시상하부는 육체적 표현을 관장한다. 결국 악플러가 혐오의 대상을 발견하면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고 홍조를 띠는 등 흥분상태가 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악플을 남길 최적의 상태가 되는 셈이다.
윤 교수는 "혐오 대상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행동 및 정서 표현은 전두엽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두엽은 다른 영역과 달리 스무 살까지 발달과 성숙이 진행된다. 사회관계를 통해 본능적 정서를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악플에는 '익명성'이라는 변수가 개입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정체성과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전두엽의 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영국 킬 대학교는 '욕설 연구' 실험을 통해 참가자가 고통을 견디는 상황에서 욕을 할 때 더 잘 참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혐오가 본능적으로 공포라는 정서를 유발하고 고통이 수반되면 이를 경감시킬 목적으로 욕설, 즉 악플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윤 교수는 "정서적 반응 통제는 전두엽의 기능이라서 연구 결과로 악플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쾌감 느끼기 위해 더 악랄하게…뇌 적응에 "죄책감 못 느껴"
악플이 반복되는 또다른 이유는 악플러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성규 한국과학심리센터 이사는 "악플러는 악인이라고 판단한 이들에 대해 응징했다고 대리 만족한다"며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영은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사람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때는 즉각적인 반응을 알 수 있지만 미디어를 사이에 놓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받을 가능성을 인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뇌는 죄책감을 느낄 때 편도체와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특히 전두엽 중에서도 안와전두피질은 부적절한 행동을 인식하고 반응적 공격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윤 교수는 "악플을 남기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며 "본능적 행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를 고찰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뇌의 '적응' 기능이다. 인간의 뇌는 특정 자극이 반복되면 둔감해진다. 처음 악플을 달았을 때는 죄책감을 느낄지 몰라도 반복될수록 적응해 죄책감을 못 느끼게 되는 셈이다.
이는 악플 중독을 유발하기도 한다. 악플러는 이미 적응해 버린 뇌가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악플을 달고 더 가혹한 말로 비난하게 된다. 마약 중독자가 갈수록 복용량을 늘려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윤 교수는 "쾌감은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나 수고를 동반하지만 악플은 신체적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며 "악플러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남을 과도하게 비난해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충족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피해자도 악플러도 뇌에 '흉터'…뇌량·해마·전두엽에 상처
일부에서는 악플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을 '나약하다'거나 '의지박약'이라는 말로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악플이 뇌에 '흉터'를 남긴다는 것이 확인됐다. 악플은 직접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육체적 폭력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팀은 '사이버볼(Cyberball)'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통해 따돌림을 경험하는 사람에게서 전두대상피질이 위축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전두대상피질은 신체적 고통을 겪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윤 교수는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두 종류의 폭력으로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은 공통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마틴 타이커 교수팀은 청소년기에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은 뇌량과 기억에 관련된 해마 영역, 전두엽의 발달이 미숙한 것을 확인했다.
언어폭력은 악플러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욕설하거나 악플을 남기면서 자신의 뇌도 망가지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정범석 카이스트 교수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언어폭력을 당한 그룹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언어폭력을 가한 그룹의 아이들도 해마 크기가 작았고 뇌의 회로 발달이 늦었다.
윤 교수는 "감정이나 정서 통제 없이 즉각적이고 일차원적인 정서 표현 수단인 욕설을 자주 사용하면 전두엽이 적절한 상황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된다"며 "전두엽의 기능 저하는 공감 능력, 의사 결정, 추론 등 다른 기능의 저하도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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