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소망한 대로,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죽는다는 것의 존엄함
죽음 예정일 며칠 전부터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남편이 커다란 TV에 수백 장의 가족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죽음 예정일이 되자 모두 14명의 친한 친구와 가족이 모여 침대에 누워 있는 여성을 둘러싸며 팔짱을 꼈다. 사랑의 말을 주고받던 중, 여성은 음악을 틀어달라 요청했다. 죽는 날을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였다. 파바로티가 부르는 '네순 도르마'가 흘러나온다.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고, 이 여성은 7분 뒤 스스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세상과 작별한다.
실제 캐나다에서 행해진 '의료조력 사망(MAiD·Medical Assistance in Dying)' 사례다. 흔히 안락사 혹은 존엄사로 불리는 바로 그 행위 말이다. 누군가는 아직 국내에서는 명백히 불법인 현장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고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에 기록된 내용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게감이 있다. 지난해 이른바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되며 조력 사망은 머지않아 국내에서 치열한 논쟁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명 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지난해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을 행해서일까. 많은 이가 조력 사망을 두고 스위스를 먼저 떠올리지만, 미국의 12개 주를 비롯해 호주와 뉴질랜드, 독일,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점차 죽음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은 합법화되거나 확대되는 추세다. 책은 2016년 조력 사망을 합법화한 캐나다에서 이를 행하고 있는 스테파니 그린 박사가 그 첫해에 만난 환자와 나눈 대화와 실행 절차, 임종의 모습,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생생하게 기록한 일종의 논픽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출생'을 관장하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12년 동안 새 생명을 받아내던 그는 조력 사망 합법화 전후로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이들의 죽음을 돕는 전문의가 됐다. 그가 근거리에서 죽음을 돕고 목격하며 알게 된 사실은, 사람들이 조력 사망을 요청하는 게 비단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존감과 자율성을 잃은 것, 삶에 의미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에 크게 연유했다. 삶의 끝을 향하고 있는 이들에겐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증상만큼 혹은 그보다 더 지배적인 것이었다.
"나는 조력 사망을 단순히 누군가의 생명을 끝내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환자의 기저질환과 고통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조력 사망을 누군가의 마지막 소망을 이루어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책에는 조력 사망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등장한다. 환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의료진, 새로운 제도에 적대적인 사람들, 심지어 생명권을 더욱 옹호하는 종교인까지 말이다. "웃으면서 가고 싶다"며 최후의 옷으로 광대 복장을 고른 말기 암 환자 에드. 처음으로 조력 사망을 접하고 혼란에 빠진 임상 간호사. 모친의 임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도, 처치를 끝낸 그린 박사에게 달려와 "어머니에게 우리 중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주었다"며 포옹을 건네는 아들. 그리고 그는 함께 요가를 즐기고 가족 파티에 초대받기도 하던 친구 리즈의 죽음을 돕기까지 한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조력 사망은 논쟁의 대상이다.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죽고 싶다면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캐나다의 경우 △환자가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어야 하며 △위중하고 치료 불가능한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적합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10일간의 숙려 기간을 두고 있으며, 죽음을 통해 어떤 식으로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조력 사망 증인이 되지 못한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약자가 타의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력 사망 합법화 첫날부터 1년간 저자가 현장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록한 고민과 쟁점은 다가올 미래에 한국에도 상륙할 것들이다.
다만 조력 사망이 윤리적·법적·절차적·정서적 난제가 켜켜이 중첩된 주제인 만큼 저자가 관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단체를 이끄는 직접적인 당사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가는 것이 좋겠다. 하나, 이야기의 터널을 통과하며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책은 가치 있다.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는' 게 당연한 세상, 생과 사를 주관할 수는 없을지언정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을까.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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