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이'가 사는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구름빵부터 알사탕까지 백희나 첫 개인전

김민호 2023. 6. 3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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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백희나 그림책' 전시의 그림책 '알사탕'의 동동이 인형. 김민호 기자

그림책 ‘알사탕’의 주인공 동동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다. 마음속으로는 친구를 원하지만 의사소통이 서툴러 친구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동동이가 신기한 알사탕을 먹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알사탕'의 줄거리. 동동이가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주변의 다양한 사물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동동이가 아빠의 턱수염이 느껴지는 사탕을 먹었더니 아빠의 진짜 속마음이 들리는 장면도 있다. 무수한 잔소리가 사실은 ‘사랑해’라는 한마디였던 것. 동동이가 설거지하는 아빠를 뒤에서 안아주면서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하는 모습은 백희나(52) 작가가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실외에서 창문을 통해 집 안을 바라보는 구도로 책에 실렸다. 그 안쪽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전시 ‘백희나 그림책’이 10월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의 첫 단독 대규모 개인전이다. 지난 2004년 발간된 작가의 첫 작품 ‘구름빵’은 물론이고 ‘달 샤베트’ ‘어제저녁’ ‘알사탕’ ‘나는 개다’ 등 모두 11권의 등장인물과 배경이 실물로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작가는 해체해 보관하던 작품들을 지난 두 달 동안 조립했다고 한다.

백희나(맨 왼쪽) 작가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 자신의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일상에서 출발한 환상'…아이들 쉽게 공감해

백 작가는 지난 2020년 한국인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아동문학상으로 일컬어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지난달 27일에는 ‘알사탕’이 이탈리아의 대표적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작가의 작품들은 14개국에 15개 언어로 출판되는 등 국제적인 그림책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작가의 작품에 빠져드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출판계에서는 그의 작품이 “평범한 일상에서 환상적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아이들이 ‘내 하루와 똑같네’라고 공감하고 마침내 성장하는 구조가 작가의 작품들을 받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작가의 작품 10권을 출판한 출판사 책읽는곰의 임선희 대표는 “먼 나라 이야기거나 마녀가 나타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놀이터에서 혹은 일상에서 또는 문구점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 같은 일들을 섬세하게 뽑아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신수진 어린이책 기획자 역시 “일상에서 시작해 상상을 통해서 성장을 이루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린이들은 정말 통쾌해하고 희망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작가가 아이들을 항상 즐거운 모습이 아니라 때로는 우울해하는 평범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요소다. 임 대표는 “작가는 조금 외로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많이 삼는 것 같다”면서 “자세히 보면 우리 아이들도 현실에서 그럴 때가 있다. 이러한 부분들에 공감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감정과 세부 묘사가 살아있는 인형과 배경, 영화적 장면 연출이 더해지면서 미적으로도 뛰어난 작품들이 탄생했다. 작가는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것이 연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신 기획자는 “인형의 표정에 어린이의 희로애락이 절실하게 표현돼 있다”면서 “독자들뿐만 아니라 비평가, 평론가들도 작가가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압도적인 비주얼에 감탄한다”고 덧붙였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 가운데 '나는 개다'의 한 장면. 다양한 각도에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김민호 기자
백희나 작가의 '연이와 버들도령'과 관련된 작품들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김민호 기자

작품 재조립에 두 달…입체로 세계 보여줘

전시장에서는 그동안 그림책 속에서만 보던 세계가 완전한 입체로 펼쳐진다. '알사탕' 의 동동이 집이 대표적이다. 관람객들은 동동이가 아빠를 뒤에서 안고 있는 집 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동이는 소파 무늬의 알사탕을 먹고 ‘텔레비전(TV) 리모컨이 옆구리에 끼어 있어서 너무 아프니까 빼달라’고 호소하는 소파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 소파는 물론이고 리모컨까지 재현됐다. 그림책 ‘이상한 손님’에서 달록이가 방귀를 뀌는 장면도 관람객에게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다. 백 작가는 “방귀를 뀌어서 날아가는 장면을 연출하느라고 힘은 들었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책과는 다른 그림이 된다”면서 “그게 저는 되게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

등장인물의 특성을 반영해 환경을 창작하는 작가의 특기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책 ‘어제저녁’ 속 참새의 집에는 나뭇가지가 들어있는 화분이 놓였다. 문도 집 꼭대기에 달렸다. 반면 뱀의 집은 천장이 낮고 길다. 뱀은 기어다니니까 문도 작다. 이렇게 작가의 발상을 되짚어 나가는 것이 전시의 또 다른 재미다. 작가는 “하나의 집에서도 많은 스토리(이야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에게는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은 전시장 입구에 놓인 그림책 ‘나는 개다’의 한 장면이다. 동동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할머니가 구슬이를 산책시키는 장면으로 구슬이가 ‘미친 듯이 폭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돼있다. 작가는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제작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작가는 “어린이집 하교하는 시간으로 설정했기에 강렬한 정오의 햇살이 필요했다”면서 “집 옥상에서 촬영했는데 구름이 자꾸 해를 가리고, 바람에 세트가 날아가기도 하고, 그사이에 햇빛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그때마다 세트를 돌려가면서 찍었는데 그때 정말 정말 힘들었다. 쓰러지기 직전에 물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면서 웃었다.

동동이가 아빠를 안고 있는 '알사탕' 속 장면이 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람할 수 있다. 김민호 기자
동동이가 아빠를 안고 있는 '알사탕' 속 장면. 김민호 기자

작가의 작품은 제작 과정이 험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가는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종이(양지, 한지, 트레이싱지)와 섬유(헝겊, 원단, 아이가 입던 옷), 스컬피 등을 이용해서 인형을 만들고 여기에 골판지나 폼보드에 채색하거나 벽지와 사진을 이어 붙여 배경을 만든다. 그 뒤에 인형을 배경에 배치하고 조명과 자세를 조금씩 바꾸며 스케치와 같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사진을 수천 장 찍는다. '구름빵'이나 빛이 중요한 '달 샤베트'는 다른 사람이 촬영했지만 최근 작품들은 작가가 직접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했다. 작가는 “입체는 조명이나 카메라 구도에 따라서 인물의 감정이 크게 달라지는데 사진가를 섭외하면 감정 어필(호소)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사진적 전문성과 감정의 어필을 비교하면 그림책은 아무래도 감정이 중요해서 제가 직접 사진을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무엇보다 관람객들이 창작에 도전하도록 영감을 주는 전시가 되기를 바랐다. “정말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그런 전시였으면 좋겠어요. 욕심을 낸다면 나도 뭐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런 영감이 쏟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야기가 주는 힘이라는 게 저는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음을 먹으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고 어려운 것도 이겨낼 수 있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게 사실 굉장히 힘들잖아요.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림책 ‘이상한 손님’에서 달록이가 방귀를 뀌는 장면도 관람객에게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다. 김민호 기자
백희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서 작품들을 두 달 동안 다시 조립했다. 김민호 기자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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