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아름답고 푸른 한강` 비엔나 닮은 서울 되려면
서방중심 주관적 평가라고 외면하면 손해
도시 동적 면모와 혁신에 대한 평가 부족
팝, 한식 넘어서는 '고급진' 문화예술 필요
인프라 여전히 부족하고 교육이 가장 낙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계열의 경제분석기업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지난 21일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를 발표했다. 최근 5년간 4회에 걸쳐 1위에 올랐던 오스트리아 비엔나(Wien(빈)의 영어식 이름)가 올해도 정상을 차지했다. 10위 안에 유럽과 캐나다, 호주 도시가 랭크된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일본 오사카가 유일하게 10위에 올랐다. 아시아 지역만 놓고 볼 때 순위는 오사카, 도쿄, 싱가포르, 서울, 홍콩, 부산, 타이베이였다. 아시아 순위에서 서울과 부산이 각각 4위, 6위를 했지만 전체 순위에서는 예년과 큰 변동 없이 서울은 60위 정도에 머물러 있다. 오사카와 도쿄에 순위가 많이 떨어진다.
◇EIU가 밝힌 올해 랭킹의 특징
EIU의 살기 좋은 도시 평가는 세계 6대주 173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다. 안정성, 의료, 문화 및 환경, 교육, 인프라 5개 범주에 걸쳐 EIU가 자체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점수화하고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EIU는 올해 평가결과에 대해 '불안전성 속의 낙관'(Optimism amid Instability)이라고 촌평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낙관적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의미다. 전반적으로 평가 점수가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보면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뛰어난 안정성을 바탕으로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인프라, 모범적인 교육 및 건강 서비스들이 조합을 이뤄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2위에 오른 덴마크 코펜하겐은 팬데믹 이후 정상으로의 복귀가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이뤄진 점이 평가됐다. 3위와 4위에 오른 호주 멜버른과 시드니 역시 재빠른 정상 회복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EIU가 서방 중심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서유럽 도시들은 순위가 하락했다. 이는 노동조합의 파업과 그로 인한 시민 생활 불편을 유발한 게 원인이 되어 안정성에서 점수를 잃었기 때문이다.
◇EIU 도시 평가에 대한 비판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평가하는 일은 출발부터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요소와 주관적인 판단을 고려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순위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먼저 주관적 판단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살기 좋다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평가는 개인이 처한 사정과 선호도,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문화와 교육, 환경적인 측면은 그가 자란 배경과 그로부터 형성된 사고방식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다.
방법론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EIU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랭킹 알고리즘을 돌려 평가한다지만,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인프라와 편의시설에 더 중점을 두는 반면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강조할 수도 있다. 지표의 선택과 상대적 가중치는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순위의 객관성을 떨어뜨린다.
평가의 근본적인 한계로서 과연 충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토대로 평가를 내리느냐는 문제도 제기할 수 있다. 대상으로 하는 173개 도시 전체에 대해 균등한 수준에서 정확한 최신 정보를 EIU가 과연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일부 도시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 특히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일부 국가는 국가 및 사회 통계가 미비하고 부정확하다. 이들 지역의 도시 순위는 대부분 바닥에 위치한다.
평가 항목이 생활 전 영역에서 제한된 범위라는 점도 지적된다. 5가지 범주를 제시하지만 도시 생활은 그 범주 밖에서 포착되는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가령 소득 불평등이나 사회적 결속, 공동체 의식 같은 경우는 평가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도시의 역동적 변화를 담아내는데 미흡하다는 것이다. 도시는 자연, 인구, 기술 등의 인자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버드대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인접성·친밀성·혼잡성을 갖는 도시는 인재와 기술, 아이디어라는 자원을 한곳에 끌어들임으로써 지속적인 혁신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이야말로 성공하는 도시의 핵심 요인"이라고 했다. EIU는 도시의 동적 요인을 평가하는 데는 부족하다. 몇몇 도시들이 자리만 조금씩 바꾸며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 어쩌면 그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순위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럼에도 순위를 무시할 수 없다. EIU와 머서(Mercer), 모노클(Monocle) 등 세계 3대 도시평가 지표는 전 세계 기업과 구직자, 여행객, 학생들이 참고하는 벤치마크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EIU의 도시 평가 순위 자체가 처음부터 기업 경영인들에게 국제 비즈니스에 필요한 세계 주요 도시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순위가 도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위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방 중심의 순위라고 고개를 돌릴 게 아니라는 것이다.
EIU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서울이 비교적 점수를 높게 받은 분야는 교통 등 인프라(비중 20%)와 의료분야(20%)다. 안전성(25%)은 중상위권, 문화와 환경(25%), 교육(10%)은 하위권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이 그간 순위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전히 정체된 것은 효율적 투자와 타깃팅 정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IU 순위가 다국적 기업과 여행 관광업계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쓰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좀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비엔나를 본보기 삼을 필요가 있다. '현재보다 과거를 먹고 산다'는 지적이 없진 않지만 비엔나는 어쨌든 다섯 항목에서 모두 고르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령 서울이 자랑하는 교통인프라 면에서도 비엔나는 도보 이동과 대중교통 이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U-5라는 새 지하철 노선을 건설 중이고 새로운 X-바겐 노선과 야간열차 서비스도 도입했다.
이런 기능적인 면모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적 자산의 전승과 발신(發信)에서도 혁신이 진행 중이다. 비엔나필의 신년음악회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비엔나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올해로 84년의 역사를 갖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음악회는 웬만한 나라에선 생중계를 한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1월 1일 정오에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홀에서 열리는 빈필 신년음악회에 노출되지 않긴 힘들다. 비엔나는 클래식 음악의 중심 도시라는 명성에 더해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등의 회회적 전통, 카페 문화의 전형을 만든 도시로서 시청각(視聽覺)의 흥취가 그윽한 도시다.
물론 비엔나와 똑같이 갈 수도, 갈 필요도 없다. 서울만의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 한류 팝의 자산을 십분 활용하는 것 외에도 클래식, 패션, 회화와 조각, 현대 건축 등 보다 '고급진' 문화 예술적 자산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그 창작자 및 종사자의 육성과 대우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인프라 측면에서도 기 갖춰진 지하철·버스 연계망을 활용해 외국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정기 패스권 발행도 확대해야 한다.
한식(韓食)은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맛과 재료, 위생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EIU가 내국인 관점보다는 외국인이 거주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서울이 뒤쳐진 외국인 거주자들을 위한 다양한 국제학교의 개설도 긴요하다. 최근 오세훈 시장이 '매력 넘치는 도시'라는 기치를 내건 것은 옳음 방향이다. 이전의 '고증학적 시정(市政)'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수직적 미감으로 튀는 도시, 첨단 랜드마크와 녹지가 어우러진 도시, 도전과 포용이 조화된 액티브한 도시로 가야 한다. 특히 한강을 모티브로 다양한 변주가 나올 수 있다. 비엔나 하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떠올리듯이 서울 하면 '아름답고 푸른 한강'이 떠오르도록, 주제가 있는 도시여야 한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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