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금 KBS는 40년 전 그런 방송 만들 수 있을까
1980년대 방송은 국가 권력의 입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9시 뉴스만 틀면 대통령 동정 보도가 나오던 당시 방송 뉴스는 ‘땡전 뉴스’라 불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도 없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공영방송에 귀 기울이고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방송 종사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에도 KBS는 나름대로 공영방송 역할을 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중 역사적으로 가장 크게 인정받는 것이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날수로 138일, 시간으로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전무후무한 방송. 이 프로그램은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당시 KBS만이 할 수 있었던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생인 기자는 비록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주위 어른들에게 당시 KBS가 국민들에게 준 감동이 얼마나 컸는지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실제로 KBS는 지상파의 맏형으로서 당시 사회에 큰 울림을 준 프로그램들을 다수 제작했다. 그 결과, ‘초분’(1997) ‘환경 스페셜’(1999~2013) ‘한국의 미’(2001~2004) 등 비(非)정치적 부문에서 명품 다큐멘터리를 내놓으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묵묵히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 방송 종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요즘 KBS에서 과거처럼 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기획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뉴스 프로그램은 1980년대와 비교해 내용만 달라졌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이러면 땡전 뉴스 시절과 뭐가 다르냐”는 사람도 많다. 뉴스만이 아니다. 각종 현대사 프로그램에서 국민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관점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내놓아 사회적 소란만 일으키지 않았는가.
1973년 KBS에 입사해 30년 넘게 재직한 강동순 전(前) 감사는 “과거 KBS는 수신료를 받는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질 높은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에서 찾았다”며 “공영방송은 공공재인데 최근 특정 세력이나 이념의 입김이 강한 조직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매체 간 경쟁이 심해진 다매체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KBS가 40년 전처럼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송을 다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TV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은 단순히 수신료 분리 징수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처럼 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을 공영방송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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