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먼저 보는 게 임자’ 연구개발 예산 30조원, 브로커까지 활개
정부가 연 3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개선에 나섰다. 정부 R&D 예산은 2014년 17조원에서 올해 30조원으로 10년 새 72%나 늘어났는데,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 못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만하고, 부실하게 운영돼 왔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비 비율은 4.9%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지만 연구·개발 성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정부 지원 R&D의 98%가 ‘성공’ 판정을 받지만, 상용화로 이어져 실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연구·개발비 100만달러당 특허 건수가 0.03건으로 OECD 37국 중 11위에 그친다. 그 결과 R&D 투자액 대비 지식재산 사용료 수입 비율이 9.9% 수준으로 OECD 평균(30%)을 크게 밑돌고 있다.
주된 이유는 연구비 나눠 먹기, 과제 쪼개기, 건수 채우기식 후진적 관행이 과학기술계에 광범위하게 뿌리 박고 있기 때문이다. 2004~2018년 15년간 우리나라 양자 분야 연구비는 2300억원이었는데, 과제 수가 235개에 달해 과제 1건당 연구비가 10억원이 채 안 됐다. 양자와 같은 첨단 연구에 10억원으로 무엇을 하나. 한국과학기술원의 한 연구원은 한 해에 무려 20개 연구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다. 말도 되지 않는다.
현재 국내 대학 이공계 교수 10명 중 6명이 정부의 연구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낸 특허는 쓸모 없는 ‘깡통 특허’가 대부분이다. 본지가 대한변리사회에 의뢰해 반도체·인공지능(AI)·신약·헬스케어 분야에서 상위 10개 대학이 지난해 하반기에 등록한 특허를 전수조사한 결과, 10개 중 7개는 상용화가 불가능하거나 사업성이 전혀 없는, ‘특허를 위한 특허’였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R&D 예산의 46%는 50대 교수가 차지하고, 30대 이하 젊은 연구자들의 몫은 5%에 불과하다. 대학가엔 정부 보조금을 따먹기 위한 연구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연구비 따먹기 카르텔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제조 강국이 된 것은 세계 최초 64D램,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이동통신 상용화, 자동차 엔진 국산화 등 연구소, 대학, 기업이 한몸이 돼 연구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가 끼어 국민 세금이 들어가면 ‘눈먼돈’이 된다. 충격적일 정도의 쇄신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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