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위안스카이와 싱하이밍 대사는 다르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2023. 6. 3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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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해외주재 대사는 본국 정부 지시대로 움직여
외교쇼 기획한건 중국정부… 사과는 그들에게 받아야
대중국 무역흑자 막내린 지금 왜곡된 한중관계 전면 리셋을
지난 6월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초대한 자리에서 15분간 준비한 원고를 읽으며 훈시하듯 한국 정부의 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국회사진기자단

19세기 유럽에서 외교관 제도가 생긴 이래 주권 국가가 외국에 파견하는 상주 외교 사절을 특명전권대사라 부른다. 그 이름도 거창한 특명전권대사라는 직함은 파견국 국가원수의 특명을 받아 국가원수를 대신해 전권을 행사할 권한이 부여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국가 간에 조약을 체결할 때 서명자로 참석하는 사람은 자신이 국가원수를 대리해 조약문에 서명할 전권을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상대국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전권위임장이라 한다. 그러나 그 나라에 상주하는 특명전권대사는 별도 전권위임장 없이도 언제든 국가원수를 대리해 협상하고 서명할 권한을 보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특명전권대사 제도가 생긴 이유는 당시의 원시적 통신 환경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비둘기나 전신과 같은 비교적 빠른 통신수단이 있기는 했으나, 비밀 사항을 국가원수에게 보고하고 지시받기 위해서는 부득이 메신저가 문서를 지참하고 직접 본국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1회 교신에 몇 주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당시는 본국의 중요한 국내외 정세도 몇 주일 후 배달되는 자국 신문을 받아봐야 알 수 있던 시대였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외교 협상을 위해서는 국가원수로부터 교섭 권한을 일괄 위임받아 활동할 특명전권대사의 존재가 필요했다. 이처럼 특명과 전권을 받아 파견된 대사는 본국 정부의 지시나 승인을 장기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통신수단이 고도로 발달된 오늘날엔 특명도 전권도 사라진 지 오래고, 특명전권대사라는 호칭은 지난 시대의 영광을 상기시키는 의례적 호칭일 뿐이다. 오늘날 크고 작은 외교적 판단과 결정은 대부분 본국 정부가 하고 대사와 외교관들은 지시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로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대사는 중대한 외교 사안에서 시시콜콜한 행정 사안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본국 정부의 지시와 승인을 받아 활동하며,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외교 교섭이나 국제회의에서 사용될 사안별 입장은 대부분 본국 정부가 사전 작성해 시달하며, 특별히 중요한 회의나 협상의 경우엔 현지 상황이 본국 정부에 실시간 보고되고 본국 정부 지시가 회담장으로 실시간 전달되기도 한다.

얼마 전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위협적 입장문을 공개적으로 낭독한 데 대한 거센 비난 여론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구한말 식민지 총독처럼 행세하며 온갖 횡포를 일삼았던 청국 대표 위안스카이와 그를 비교하면서 기피 인물로 추방하자는 주장도 많았다. 그러나 위안스카이와 싱하이밍은 경우가 전혀 다르다. 오늘날 해외 주재 대사가 본국 정부 지시나 사전 허가 없이 그런 문제성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만일 한국 대사가 정부 허가 없이 그런 소동을 벌였다면 소환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고도로 통제된 공산국가 중국의 대사가 베이징 당국의 지시 없이 그런 일을 벌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비난받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할 주체는 싱하이밍 대사 개인이 아니라 이면에서 그런 외교 쇼를 기획하고 지시했을 중국 정부와 외교 당국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을 중국의 속방 정도로 가볍게 여기며 종주국 행세를 해 온 중국 정부의 오랜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한 모든 허물을 싱하이밍 주한 대사에게 씌우고 종결 처리하는 방식이 외교적으로는 다소 편하고 후과에 대한 부담도 적을 것이나, 그런 미봉책으로 이 사안을 적당히 덮는다면 유사한 사건들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외교적 행태가 이처럼 압박과 위협 일변도로 전개되고 있는 건 중국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그간 스스로 자신을 대국 앞의 소국이라 칭하며 중국의 부당한 언행에 굴종과 침묵으로 일관해 온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눈앞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 때문에, 혹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환상에 현혹되어 중국의 무리한 횡포를 스스로 합리화하며 침묵해 온 정치권과 경제계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이제 중국 경제가 점차 침몰해 가고 대중국 무역 흑자도 막을 내린 만큼, 국민 각계가 뜻을 모아 그간의 왜곡된 한중 관계를 전면 리셋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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