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에 유도판 뒤집으러 나타난 ‘한판승의 사나이’

성진혁 기자 2023. 6. 3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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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현역 복귀 유도 이원희

“1승 했다고 많은 분이 축하해 주시니 얼떨떨하네요.”

이원희(42) 용인대 교수(유도경기지도학과)는 지난 주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73㎏급에 출전했다. 한국 유도 선수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모두 차지했던 그가 15년 만에 현역 선수로 돌아왔다. IJF(국제유도연맹)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도의 전설이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한 빌딩에서 만난 유도 레전드 이원희. 선수 시절 48연승을 기록하며 ‘한판승의 사나이’로 불렸던 그는 15년 만에 현역 복귀를 알리며 지난 주말 국제 대회에서 1승을 올렸다. “한국 유도에 새 자극을 주고 싶다. 목숨 걸고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이태경기자

이원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왕기춘(35·은퇴)에게 진 뒤 27세에 매트를 떠났다. 이후론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이다 “한국 유도에 새 자극을 주고, 국민을 향해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면서 작년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더 일찍 실전에 나서려 했지만 코로나에 두 번 걸리고, 예기치 않게 용인대 유도팀 감독 대행을 맡으면서 시점이 다소 늦춰졌다 이번에 등장했다.

28일 만난 그는 담담하게 복귀 무대를 돌아봤다. 지난 대회 1회전에서 스무 살 어린 벨라루스 출신 루슬란 할라바초우(22)에게 허벅다리 후리기 등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다 반칙승을 거뒀다. 상대가 유도에서 금지된 ‘다이빙(Diving·매트에 머리를 박은 채 플레이)’ 동작을 취하다 반칙패를 당했는데 이원희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자 방어에 급급하다 무너진 것. 하지만 2회전에선 타지키스탄의 베흐루지 호자조다(28)에게 4분 경기 막판에 안뒤축걸기를 당하며 절반 기술을 허용해 대회를 마쳤다. 호자조다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다. “1회전 때 상대가 극단적으로 방어를 하더라고요. 부드럽게 풀어갔어야 하는데, (큰 기술로) 던지려고만 하다가 체력을 많이 소모했습니다. 거기서 미스(실수)가 난 거죠.”

이원희는 “상체 근력은 괜찮아서 좌우로 흔들려고 했는데, 상대도 힘이 좋아서 안 통하더군요. 하체와 코어(core·척추를 둘러싼 인체 중심부) 근육 훈련이 부족했습니다. 업어치기나 빗당겨치기를 시도할 때 상대가 힘으로 눌러버리니 제 몸이 찌그러졌어요”라며 웃었다.

15년만에 현역 복귀한 용인대 이원희 교수가 28일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서 유도복을 둘러메고 포즈를 취했다./ 이태경기자

비록 1승에 그쳤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0점이었던 세계 랭킹 포인트가 160점이 되면서 순위도 160위까지 올렸다. “긴장이 풀렸는지 한국에 돌아오니 편도가 붓고 몸살 기운이 돌더군요. 준비 과정부터 돌아보며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이원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유도 73㎏급에서 첫 경기를 제외하곤 모두 한판승으로 장식하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국내·국제 대회 48연승(2003년·44번 한판승) 기록을 세워 ‘한판승의 사나이’로 통했다. 은퇴 후 탁구 국가대표 출신 아내(윤지혜)의 남편이자, 1남 2녀 아빠 역할에 충실하던 그는 “대한민국에 희망과 용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한 세대 아래 후배들과 경쟁을 선택했다.

본격적인 몸만들기는 지난봄부터 시작했다. 용인대 제자들이나 모교(보성고) 후배들과 대련을 했다. “고등학교 선수들은 스피드가 좋고, 대학 선수들은 체력과 힘이 우세하니까요. 제 기술을 구사하는 타이밍을 잡는 데 초점을 맞췄죠.”

최대 난관은 체중 감량이었다. 평소 몸무게가 80㎏대 초반이라 10㎏ 가까이 몸무게를 줄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17%였던 체지방을 11%로 낮췄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살이 잘 붙지 않아서 감량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번엔 굶으면서 운동하고, 막판엔 물 마시는 것도 참아가면서 체중을 뺐습니다. 경기 전날 계체를 통과하고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었는데 예전처럼 회복이 빨리 되지 않더군요.”

15년만에 현역에 복귀한 용인대 이원희 교수./이태경기자

이원희는 앞으로 내년 파리 올림픽까지 꾸준히 국제 무대에 나갈 예정이다. 일단 9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를 겨냥하고 있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우선 세계 랭킹 17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통과해야 한다. ‘제자나 후배들과 대결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겠나’라고 묻자 “저라고 그런 생각 안 해봤겠습니까. 하지만 스포츠에서 양보는 없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겨뤄야죠”라고 말했다. 작년에 은퇴 선수와 현역 선수 대결을 다룬 한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힘을 얻었다. 고맙다’는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 도전을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다. 정말 엄청 힘들지만 (복귀를) 잘 선택한 것 같다. 기도를 할수록 목숨 걸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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