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상실을 겪은 모든 이에게
우연히 동네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름을 부르니 힘없이 돌아보는 얼굴이 안쓰러워 보였다. 잠을 못 잔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서 어제 낯선 도시에서 먹었던 막국수와 그곳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내가 말한 그 도시를 잘 안다고 했다. “우리 레오를 그 도시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났어.”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친구의 반려견, 레오와의 추억으로 이어졌다. 레오 이야기에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친구 앞에서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다.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곳에 갔을 거라는 말도, 꼭 다시 만날 거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니까.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없으니까. 나는 빨개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아는 것을 말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레오의 순하고 착한 얼굴과 레오가 좋아했던 간식 그리고 레오를 말할 때 친구의 눈빛이 레오를 똑 닮았다는 것. 내 말을 듣던 친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레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에 친구에게 이주란 작가의 소설집을 선물했는데, 친구는 그 책을 읽을 새가 있었을까? 그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일이 지나고 난 후에, 무엇을 상실한 후에 그다음을 살아간다. 있었던 것이 없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지만 뒤로 물러나게 된 일들을 겪고 나면 그것이 꼭 끝인 것 같아도 삶은 언제나 그다음이 있고, 그다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떤 날의 기억이나 마음이라고 말한다.
나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레오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친구의 기억과 그의 마음속에 있는 레오는 잘 알고 있다. 너무 순하고 착해서 친구의 기쁨이었던 강아지. 그러니 레오를 부르면 레오가 달려오던 그때의 기억과 마음으로 다음을 살아보면 어떨까?
이 글은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친구를 향한 위로이자, 상실을 겪은 모든 이에게 건네고 싶은 마음이다.
신유진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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