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송중기도 무서워하는 경력 단절

백수진 기자 2023. 6.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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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된다는 것은 때론 일자리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하지만 난 내 직업을 사랑하고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거다.”

톱스타한테서, 그것도 남자 배우한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배우 송중기가 최근 중국 매체 시나연예와 한 인터뷰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여성들은 송중기의 발언에 분노했다. 수억대 출연료를 받는 데다 차기작 3편이 개봉을 앞둔 배우가 “일자리를 잃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는 비판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겠지만, 이번 논란은 여성들의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계에선 결혼·출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학 졸업 후부터 수시로 경력 단절이 발생한다. 전국 대학의 영화과 성비는 5대5인데 현장에 가면 성비가 불균형해지는 현상이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돼 왔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6편에서 남성 주연 영화는 29편으로 여성 주연(7편)보다 4배 더 많았다. 배우·감독·스태프 포함 여성 인력 비중은 16.9%로 전년도 23.4%에서 6.5%p 감소했다. 사석에서 만난 한 여배우는 “최근 흥행한 ‘범죄도시3′이나 ‘사냥개들’만 봐도 여배우는 단역조차 구하기 어렵다”면서 “코로나 이후 비교적 흥행을 보장하기 쉬운 액션·범죄물로 장르가 더욱 편중되면서 여배우들이야말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국내 흥행 30위 영화의 주요 캐릭터 나이대를 봐도 여성 캐릭터는 20대(28.6%)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30대(25%)·40대(25%)였다. 반면 남성 캐릭터는 40대(35.7%), 50대(28.6%), 30대(17.9%) 순. 주연급 남자 배우에게 결혼이나 자녀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고, 연기력만 보장된다면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다양해졌다.

물론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송중기의 입장에서 로맨스물 섭외가 들어오지 않고 여성 팬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순 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발언으로 여성 팬을 더 잃을 것 같다. 최근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만 25~54세 여성 10명 중 4명 이상은 결혼·임신·출산 등의 이유로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다시 일자리를 얻기까지는 평균 8.9년이 걸렸다. 홍수로 집이 떠내려간 사람들 앞에서 신발 젖은 걸로 울고 있으니, 경솔한 발언이란 비판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남자 배우한테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반갑기도 하다. 육아와 가정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각오에서 나온 발언이길 바란다. 경력 단절에 대한 공포를 없애지 못한다면, 저출산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없다. 송중기뿐 아니라 모두가 경력 단절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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