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유행민감] 진짜 빌런의 시대, 수퍼히어로 영화의 시대는 갔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2023. 6.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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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수퍼히어로는 망했다. 당신이 마블과 DC가 만드는 수퍼히어로 영화의 팬이라면 첫 문장을 보자마자 살짝 짜증이 치솟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 수퍼히어로는 망했습니다. 확실히 망했습니다. 지난주 개봉한 DC 영화 ‘플래시’는 미국에서도 망하고 한국에서도 망했다. 개봉 전엔 기대가 컸다. DC 관계자들은 “역사상 최고의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양념을 미리 뿌려댔다. 1989년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에서 배트맨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키튼이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올드팬들을 자극했다. 그런데 아니 잠깐. ‘플래시’가 뭐냐고?

바로 그게 포인트다. 사실 당신은 플래시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있다.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수퍼히어로다. 마블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로 ‘마블 유니버스’를 만들어 장사를 하자 경쟁사 DC도 그들 나름의 유니버스를 만들기로 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으로 단독 영화를 만들었다. ‘어벤져스’처럼 ‘저스티스 리그’라는 수퍼히어로 종합 선물 세트도 만들었다. 성공작도 있었고 실패작도 있었다. 어쨌거나 마블과 DC의 경쟁 체제로 수퍼히어로 영화는 영원히 전성기를 누릴 것 같았다.

영원한 것은 없다. DC가 사력을 다해 홍보한 ‘플래시’는 처참할 정도로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나는 ‘플래시’가 나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학생 시절 극장에서 본 배트맨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손뼉을 쳤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젊은 관객에게는 딱히 감동적인 일도 아니었겠다. 1989년 영화 주인공이 2023년에 다시 등장한다는 건, 내 세대 시간대로 환산하자면 1970년대 영화 주인공을 2000년대에 다시 보는 것과 같다. ‘더티 해리’(1971) 속편이 2000년대에 개봉했다고 1976년생인 내가 환호했을 리는 없다. 시간의 상대성이란 참으로 무자비하다.

DC만 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마블도 마찬가지다. 2022년부터 개봉한 ‘토르 :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는 모두 예상치를 밑도는 흥행을 기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블은 흥행의 성전이었다. 뭘 내놓아도 사람들은 보러 갔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두 시간 동안 존재의 의미에 대해 대화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스타일의 예술영화를 내놓았어도 사람들은 보러 갔을 것이다. 그 시절은 끝났다. 어쩌면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타노스가 핑거 스냅으로 인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든 순간, 관객 수도 절반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일지 모른다. 타노스는 역시 대단한 악당이다.

수퍼히어로 영화가 죽을 쑤는 걸 미국에서는 ‘수퍼히어로 피로감(Superhero Fatigue)’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20년을 봤더니 다들 좀 피곤해진 것이다. 마블이 지난 성공에 도취되어 창조적으로 방만해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마블은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고 그놈의 ‘멀티버스’ 놀이만 해댔다. 멀티버스란 평행 우주 혹은 다중 우주라는 뜻이다. 게으른 창작자의 치트키다.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우주에서 캐릭터를 마구 뽑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는 소니가 만든 지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아예 제목이 멀티버스다. DC의 ‘플래시’도 멀티버스가 소재다. 치트키는 한번 쓰면 그걸로 효용이 끝난다. 잔재주만 부려서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얼마 전 월트디즈니는 마블을 이끌던 수장들을 해고했다. 1990년대부터 마블의 성장을 이끌고, 2009년 디즈니의 마블 인수 때 핵심적 역할을 한 아이작 펄머터 마블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잘렸다. 2006년부터 최종 책임자로 일한 빅토리아 알폰소 총괄 PD도 잘렸다. DC는 계획된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마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만들었던 제임스 건 감독을 영입해 대대적 수리 작업에 나섰다. 쓰러져 가는 집안을 일으키려면 가장을 교체하고 대들보를 수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희망이 있겠냐고?

나도 한때는 희망을 좀 가져보려고 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깨달았다. 마블에는 희망이 없다. DC에도 희망이 없다. 민간 군사 기업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용병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돌격한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나는 수퍼히어로 유니버스의 시대는 완전히 끝난 걸지도 모르겠다고 직감했다. 사실 그 시대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순간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는 그와 비슷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다.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차 세계대전과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미국과 소련이라는 열강이 제3 세계의 전쟁에 참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던 냉전의 부산물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냉전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평화로운 시절이었다고 비틀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순간은 2차 세계대전의 재현이었다. 제1 세계로 간주되는 대륙에서 오랜 역사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를 영토 문제로 침공하는 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적이 없다. 적어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로는 없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자 수퍼히어로들은 완벽한 가짜 캐릭터가 됐다. 최고의 빌런이 겨우 부동산 재벌 출신 미국 대통령 따위였던 평화로운 시대에 수퍼히어로 영화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유니버스를 창조했다. 그 가상 세계 속에서 히어로들은 빌런에 맞서 인류를 구원했다. 키이우 시내에 러시아산 폭탄이 떨어지는 날 히어로는 없었다. 아이언맨이 날아와 미사일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수퍼맨이 사람들을 구하지도 않았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서 수퍼히어로들은 위기에 처한 가상의 동유럽 국가 소코비아를 구한다. 어벤져스는 같은 동유럽 우크라이나에는 오지 않았다. 세계대전의 시대에 수퍼히어로 영화를 본다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 되어버렸다. 현실과 영화의 괴리가 지금처럼 거대한 시기는 없었다.

이제 극장을 나서는 순간 수퍼히어로 영화의 하염없는 낙관성은 휘발한다. 푸틴이라는 빌런과 프리고진이라는 빌런이 부딪치고, 벨라루스로 러시아의 핵무기가 이송되는 시대는 극장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우리의 뺨을 친다. 수퍼히어로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안락한 정의감은 효용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수퍼히어로 영화의 시대적 종말을 확언하는 것인가?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미래를 완벽하게 내다볼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밝히며 이 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이 글의 후속 편은 중국이 옆에 있는 작은 열대 섬나라에 미사일을 쏘는 날 쓸 예정이다. 그때까지도 수퍼히어로 유니버스가 굳건하게 존재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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