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광주·전주·부산에서 예술을 ‘찬탈’한 세력들
‘감시 없는 종신 직장’에서 진영 갈등의 소음만 나온다
1995년 9월 20일 광주는 좀 더웠다. 한복 입은 할머니들이 한 손엔 양산, 다른 손에는 떡과 과일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여기가 뭐 하는 데라고?” ‘비엔날레’라는 말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당시 광주에 도착해 처음 들은 소식이 “설치 작품 일부가 치워져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었다. 쿠바 작가가 ‘난민(難民)’을 표현하기 위해 맥주병 수백개 위에 나룻배를 올려놨는데, 청소부가 그걸 쓰레기로 착각한 것이다. 현대 설치 미술은 그렇게 광주에 입성했다.
제1회 입장객은 무려 163만명. 전국에서 관광버스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실어날랐고, MBC는 62일간 매일 현장 생방송을 했다. 그걸 흠잡는 사람은 없었다. ‘80년 광주’가 그 이상의 도시가 되길 바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1980년대 일부에서 쓰이던 ‘예향 광주’라는 말은 이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수식이 됐다.
“우리 형편에 아직 이르다”는 걱정은 1996년 제1회 부산국제 영화제 때도 나왔다. 그래도 영화인 열망에 세금이 들어갔다. 4년 후엔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렸다. 고도(古都)가 ‘디지털, 독립영화의 도시’가 된다는 건 괜찮은 발상이었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 14회, 전주국제영화제도 24회 행사를 치렀다. 10월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28회째다. 여기까지 오느라 국비, 시비, 기업 후원금 등 공적 자금만 수천억원이 들어갔다. 이 투자는 가치가 있었을까.
단연코 있었다. 있는 정도를 넘어 이제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의 진원이 됐다.
한국 대표 화가 박서보(91)씨가 쾌척한 100만달러(약 13억원)로 광주비엔날레가 ‘박서보미술상’을 신설했다. 1회 수상자를 내고 취소됐다. 광주 문화계가 들고일어나 시위를 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부역한 작가가 주는 상이라 ‘광주 정신’에 맞지 않는다.” “호남 지역 인사들이 행사를 좌지우지해 성장에 한계가 왔다”는 말이 나온다.
선동적 작품을 광주와 떼어놓기는 힘들었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하고 세월호와의 연관성을 암시한 걸개 그림(홍성담 그림)이 출품됐다. 논란 끝에 작가가 자진 철거했다. 이제는 그 정도 타협도 없다. 편협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 공기업’ 비엔날레가 몇몇 사람 손에 남길 바라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비엔날레에서 광주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국제적 작품이 하나 나오길 했냐”고 반문한다. “감시와 견제가 없는 치외법권 속에서 광주 정신이 시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부산영화제 상황도 덜하지 않다. 지난 20여 년간 감독, 제작자 등 ‘문화 권력자’ 몇 명이 영화계 ‘실소유주’처럼 군림해 왔다. 무능력한 창작자는 기가 죽어 지내지만, 영화제에서는 그런 시장 원리도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부산을 둘러싼 논란의 주제는 ‘영화제 사유화’ ‘지인 채용’ ‘성 추문’ 같은 것들이다. 영화제가 몇몇 인사의 ‘종신 직장’이 된 탓이다. 이 지경이 된 것 역시 2014년부터다. 당시 ‘다이빙 벨’ 상영을 두고 논란이 일자 영화제 ‘실소유주’들은 중도 인사를 내쫓고 진영의 벽을 더 높이 쌓았다. 그 벽 틈으로 구린내가 풍겨나온다.
노무현, 노회찬, 문재인 다큐 제작에 돈을 지원하고, 사드 반대, 4대강 왜곡, 조국씨 찬양 다큐를 출품작으로 선정해온 전주영화제는 이미 ‘정치 중독’처럼 보인다.
예술을 빼앗아 제 진영, 제 뱃속을 채운 게 누구인지 광주, 부산, 전주는 알고 있다. 알고도 참는 건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협업 중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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