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에 손배소, 美 18개 도시로 늘었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보안 시스템이 취약한 구형 현대차·기아 차량을 훔치는 이른바 ‘절도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현대차·기아가 졸지에 대규모 법적 분쟁을 겪고 있다. 시애틀, 뉴욕, 볼티모어 등 18개 미국 주요 도시가 “차량 도난 증가로 경찰력 투입 등이 증가해 해당 도시에 손해를 끼쳤다”면서 작년 말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잇따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도 지난 27일(현지 시각) 이 사건에 대해 리콜을 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미국 주요 도시가 책임을 외국 자동차에 돌리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아닌 미국 GM이나 포드 등이 대상이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거란 얘기도 있다. 최근 미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대차·기아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제’라는 것이다.
◇18개 도시 “절도 쉬운 차 만든 잘못”
미국에서 이른바 ‘절도 챌린지’ 대상이 된 차량은 도난 방지 장치인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없는 차다. 2021년 11월 이전 출시된 엘란트라, 쏘나타, 베뉴 등 이런 차가 미국에 약 900만대 있다. 일부 젊은층이 틱톡과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 절도 관련 영상을 올리면서 이 ‘범죄 놀이’가 유행으로 번졌다. 도난 사고가 급증하자 현대차·기아는 “도난 방지 장치가 선택 옵션으로 돼 있었을 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차”라고 설명해왔다. 그런데도 시애틀 등 18개 도시는 작년 11월부터 현대차·기아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냈다.
이들은 현대차·기아가 ‘공적 불법 방해’(public nuisance)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공적 불법 방해는 건강·안전 등 공공의 권리를 불합리하게 침해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현대차·기아가 절도를 저지르기 쉬운 차량을 제조한 탓에 절도 등 불법행위가 늘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미국 시민 세금이 불필요하게 쓰였다는 것이다. 특히 각 도시는 현대차·기아가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의로 도난 방지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에는 이모빌라이저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자체가 없어 이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게 현대차·기아의 입장이다. 또 이모빌라이저 유무와 절도의 상관관계 역시 입증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NICB(전미보험범죄국)는 매년 도난 사고가 많이 일어난 차량을 조사해 발표하는데 현대차·기아 차량은 10위권에 든 적이 없다. 도난 대상 차량 최상위권에는 오히려 포드나 GM 등 미국 업체가 오르는 일이 많다. 한 통상 전문가는 “이번 절도 행위가 이례적으로 늘어난 것은 틱톡과 유튜브 등에서 영상이 확산된 것이 1차 원인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으면서 현대차·기아만 문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현대차·기아만?
미국 내에서도 현대차·기아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다. CBS 기자 출신 언론인 버나드 골드버그는 최근 의회 전문 매체 더힐에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약국에 강도가 들면 선반에 물건을 진열해놨다는 이유로 약국을 운영하는 기업을 고소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미국에서 어느 소송이나 마구잡이로 제기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런 점 때문에 각 도시가 현대차·기아를 책임을 물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절도를 당한 차 주인들이 도시의 치안 등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걸 해소하려는 차원이라는 뜻이다. 실제 지난달 15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볼티모어시는 지난 2020년 경찰 예산을 2200만달러(약 260억원) 삭감해 많은 경찰이 사직했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미국에서 선전하는 현대차그룹을 견제하기 위한 소송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현대차는 지난해 684만대를 팔아 글로벌 3위에 올랐고,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도 테슬라, 포드에 이어 3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 소송으로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지난달 현대차·기아는 이모빌라이저 미장착 차량 관련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2억달러(약 2700억원) 규모 합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 소송 관련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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