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의 세상현미경] 골짜기 세대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2023. 6.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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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2023 FIFA 아르헨티나 U20 월드컵 축구를 손에 땀을 쥐고 봤다. 솔직히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프랑스와 붙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지는 것을 전제로 경기를 봤다. 결과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두 번째 예선 경기는 남미의 강호 온두라스였다. 이 경기도 기대하지 않았다. 후반 초반까지 2골 차로 졌다. 여기까지구나 하는 순간 2골이 터져 2-2 무승부가 되었다. 마지막 경기는 감비아였다. 프랑스와 온두라스를 모두 2-1로 이기고 올라온 강팀이었다. 숨을 죽이고 경기를 봤다. 0-0 무승부였다. 그리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다시 몹쓸 생각이 마음속을 채웠다. 지금까지 잘 했다. 이제부터는 져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게. 이것이 본마음이었다. 16강 전의 상대는 에콰도르였다. 2019년 폴란드대회 4강에서 1-0으로 이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강호다. 또 마음이 요동쳤다. 이럴 때마다 왜 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지 모르겠다. 결과는 3-2 승 8강 진출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어리둥절하면서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을 봤다. 이때는 이길 수 있겠다는 마음이 진다는 생각을 조금 앞섰다. 그간 너무 진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미안한 마음과 우리 팀이 의외로 잘한다는 생각이 겹치면서다. 결과는 연장전 끝 1-0 승리였다. 4강이 확정되었다. 이후 경기는 모두 져 4강에 머물렀다. 하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놀라움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고마움이 뒤섞이는 오묘한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이번 팀은 2017년(한국)과 2019년(폴란드) U20 팀에 비해 실력이 낮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가장 큰 특징은 2017년의 이승우, 2019년의 이강인과 같은 걸출한 스타가 없다는 것이었다. 축구에서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는 팀의 성적에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 낸다. 2019년 폴란드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강인이라는 스타가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번 팀에서는 그런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축구계에서는 이들을 실력이 처진다는 의미로 ‘골짜기 세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세대가 일을 냈다. 에콰도르와의 16강전과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는 최석현이라는 선수가 두 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예선 프랑스와 16강 에콰도르 전에서는 이영준이라는 선수가 골을 기록했다. 이들은 축구 광팬이 아니고서는 잘 알기 어려운 선수들이다. 이들이 일을 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의 축구 평균 실력이 향상되었음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이 지속적으로 빠르게 배출되고 있음이 증거다. 차범근-박지성-손흥민-김민재-이강인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스타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이들이 배출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은 동시대에서 활약 중인 글로벌 스타들이다. 이런 스타들을 보면서 다른 한국 선수들도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소리 없이 무명의 선수들이 역량을 키우고 있었지만 영웅들에게 주목하느라 이들 선수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번 U20 팀 선수들은 “우리도 있어요”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평균 실력이 높아졌지만 다른 나라 팀들과 비교하면 전력상의 열세가 보였다. 이를 극복하려는 전략과 피눈물이 보였다.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 잘 나타났다. 한국은 수비 중심의 전략을 폈다. 슈팅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체 경기를 통틀어 4-22였다. 유효슈팅에서도 1-3 열세였다. 조별 예선 경기에서도 수비를 하느라 볼 점유율은 상대 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그럼에도 한국팀은 승리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연장전에서의 유일한 유효슈팅 1개가 골로 연결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감독의 작전을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능력과 엄청난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은중 감독은 경기 초반이 아닌 경기 후반에 득점하는 전략을 세웠다. 경기 초반에는 밀집 수비로 상대 팀의 힘을 빼고 경기 후반에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전략이다. 8강전까지 얻은 8골 중 4골이 세트피스에서 얻었음이 이를 말해준다. 한국팀이 수비를 할수록 상대 팀은 수비라인을 올려 공격했다. 이때 허점이 보이면 전광석화처럼 역습을 했다. 당황한 상대팀은 파울을 하거나 허둥지둥 공을 처리했다. 이때 세트피스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팀은 이것을 노렸다. 세트피스가 성공하려면 정확히 공을 배달하고 슈팅으로 연결하는 피눈물 나는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결과는 실전에서 골로 연결되었다.


U20 팀은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 역시 이번 U20 팀과 비슷한 경로를 경험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이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은 G7국가의 초대를 받았다. 이제는 G8국가 모임체를 만들어 한국을 편입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른 선진국에서 나오고 있다. 축구로 치면 8강에 진출한 셈이다. 그사이 한국 사람들 정말 피눈물을 흘리며 노력했다. 가난의 골짜기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시간들을 극복해냈다. 이번 U20 팀에서 같은 감정을 느낀다. 정말 애썼다. 자랑스럽다. 그리고 고맙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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