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민 성금으로 세워지는 위트컴 장군 조형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는 11월 11일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
유엔군 장군과 한국의 청년 및 어린이들이 함께 바라보며 걸어가는 모습의 조형물이 세워진다.
국적을 떠나 영원한 부산인, 한국인이 된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 정신과 리더십, 그 품성을 우리 마음에 담아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11일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 유엔군 장군과 한국의 청년 및 어린이들이 함께 바라보며 걸어가는 모습의 조형물이 세워진다.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밝은 모습이다. 그들은 어디를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차드 위트컴(1894~1982) 장군. 지금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안식 중인 자신이 애정을 쏟았던 한국의 어린이, 청년과 함께 손잡고 남구 유엔평화공원에서 되살아난다. 전 세계 한국전쟁 참전 국가가 부산을 향하여 묵념하는 그날(Turn Toward Busan), ‘We go to the future together(우리는 함께 미래로 간다)’가 울려 퍼질 것이다.
장군은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군수 책임자로서 아이젠하워 장군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필리핀 항구 책임자를 거쳐 1953년 부산군수사령관으로 근무했다.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 대화재로 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군수 창고를 열어 즉각 구호에 나섰다. 하지만 상부에 허락 없이 군수 물자를 민간인에게 나눠줬다는 이유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다.
이뿐 아니다. 부산대 장전캠퍼스 부지 확보, 메리놀·성분도병원 등 각종 의료시설 건립, 부산 시내 교량 및 도로포장 등 인프라 확충, 전역 후 고아원을 운영하는 한국인 한묘숙(1927~2017) 여사와 결혼해 전쟁고아를 돌보는 일, 북한에 남은 유엔군 유해 송환 등을 헌신적으로 했다. 죽어서도 미국 웰링턴 국립묘지가 아니라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생전에 장군은 자신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금언처럼. 참으로 겸손한 인물이었다고 부인 한묘숙 여사는 증언했다. 한 여사는 생전에 위트컴 장군이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한 줄이든 한 장이든 하와이대학에 유학 보낸 딸(민태정 현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에게 편지를 쓴 뒤 일과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종이 한 장 허투루 버리지 않고 양말과 속옷을 아내가 있음에도 본인이 매일 저녁 직접 빨아 널었다고 했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에서 행한 이런 선행을 단 한 번도 아내에게 말한 적이 없다.
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0일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박수영 국회의원과 시민위원을 주축으로 발족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 대구 심지어 미국에서도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1만3000여 명의 부산 시민과 단체가 모금에 동참해 동상 건립을 위한 목표액 3억 원을 달성했다. 모금에 동참한 시민 이름은 조형물 배경석 뒤에 새겨진다. 부산역전 대화재 당시 장군의 도움을 받았던 3만 명 이재민 숫자에 맞춰 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시민 3만 명이 1만 원씩 성금을 내는 방식으로 기념조형물을 세워 은혜에 보답할 계획이다.
국적을 떠나 영원한 부산인, 한국인이 된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 정신과 리더십, 그 품성을 우리 마음에 담아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많은 시민이 동참하기를 기대해 본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