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하루 만에 한 달치 비가 쏟아지는 나라

한대광 기자 2023. 6.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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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 논의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대표적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은 홈페이지에 “1987년 6월 항쟁 이후 높아진 시민들의 사회참여 기운에 힘입어 1988년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와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가 통합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을 직접적인 뿌리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는 소위 운동권의 또 다른 목소리 정도로 폄하됐다.

한대광 사회에디터

이제는 모든 국민이 참가하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제도화될 정도로 환경은 생활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환경문제의 최대 현안인 지구온난화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온난화 해결을 위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아쉽지만 아직도 “많지 않다”고 단언하고 싶다.

한국에서는 더우면 에어컨을 마음껏 켜고, 길거리에 즐비한 커피 매장에서 얼음 가득한 음료를 사서 마시고, 쾌적한 자가용으로 어디든 다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는지는 굳이 따질 이유가 없다.

더 큰 장벽은 한국이란 생태계의 흐름과 질서를 좌우하는 정치권과 경제계다. 한쪽 진영만 이기면 된다는 식의 선거가 반복되고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게 목표인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득세하는 판에 환경문제는 권력과 이윤을 획득하는 데 장애가 되는 걸림돌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

진짜 환경은 걸림돌 정도일까. 환경이 개인의 삶과 사회라는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답이 나올 듯하다.

낙동강은 대구 등 영남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식수원’이다. 매년 녹조로 뒤덮인 강물을 정화해 식수로 바꾸는 게 큰일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 달이나 먼저 불청객이 찾아왔다. 지난 19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있는 낙동강 지천 응암천을 찾아가 본 경향신문 기자는 “물가를 향해 몇 걸음 옮기자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녹조는 청산가리의 6600배에 달하는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을 함유하고 있다. 이 물을 식수로 바꾸려고 갖가지 첨단 기술이 동원되고 있지만 문제는 녹조 현상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구환경청도 “올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할 정도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갔다. 강원도 양양 등 해안가에서는 열대야가 이어졌다. 폭염주의보는 지난해보다 일주일이나 빨라졌다.

기상청이 1912~1940년과 1991~2020년의 각 30년 기후를 비교해 보니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강수일은 연평균 21.2일 줄어든 반면 강수량은 135.4㎜나 급증했다. 폭염과 집중 호우가 빈번해졌다는 뜻이다.

실제 광주에 지난 27일부터 24시간 동안 쏟아진 비는 274.6㎜다. 이는 평년(1991~2020년) 7월 한 달치 평균 강수량인 294.2㎜와 맞먹는다. 하룻밤에 한 달치 내릴 비가 쏟아진 셈이다. 지난해 여름 사망 사고까지 발생한 서울과 포항의 폭우도 우연이 아니라 예견된 환경의 역습이라고 보는 게 맞다.

기업들은 이젠 온난화 해결이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수출도 할 수 없게 됐다. 대표적으로 환경 경영을 구체화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수 평가는 RE100으로 이어지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이다. 정부의 강제는 아니지만 구글, 애플,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가 확산되면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은 RE100에 가입하지 못할 경우 이들 기업과 거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친환경, 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이 유럽과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무한정 생산하고 마음껏 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려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이제는 접어야 할 때가 됐다. 정치권은 생태적 가치를 최우선 정책으로 설정해야 한다. 환경은 정치적 이해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도 석탄류에 의존해 온 관성을 벗어던지고 무한 변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개인도 편리함보다는 느리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늦었지만 머리를 맞대야 할 상황이다.

한대광 사회에디터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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