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문화원 점거’ 주동자의 괴담 지적

경기일보 2023. 6.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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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1985년의 일이다. 38년도 넘어가는 과거의 일이다. 학생운동사의 족적이 세월보다 크다. 서울 복판의 미국문화원을 통째로 점령했다. 주한 미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광주 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 문화원 외벽에 그들의 요구를 내걸었다. 학생 운동을 세계적 이슈로 확산시켰다. 농성을 72시간 만에 풀었다. 스스로 연행됐다. 주동자 20명이 다 실형을 살았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과 강대국 미국을 동시에 타격했다. 일찍이 없었던 정권 투쟁이었다. 윤성민 당시 국방부 장관이 ‘광주 사태 전모’를 발표했다. 국방위 답변 형식이었다. 그나마 첫 언급이었다. 워커 주한 미국 대사도 입장을 냈다. ‘광주 사태는 한국 내의 문제로 미국이 책임질 것이 없다.’ 역시 첫 입장이었다. 정부의 학생 운동 대처는 강경으로 돌변했다. ‘경찰력 투입 자제’ 기조를 버렸다. 대대적 검거 작전에 나섰다.

그 사건의 주동자 중 하나가 함운경씨다. 사건 당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이었다. 국민의힘이 그를 초청했다. 강연의 방향성은 예상됐었다. 그런데 발언과 정도가 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공격을 ‘반일감정 자극’이라고 단정했다. 한미일 삼각 안보 체계를 흔드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의 죽창가도 다시 말했다. ‘쟤가 미쳤나’ 생각했다고 했다. 보수 진영에서 더없는 소재로 받았다.

반미까지 외쳤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달라진 견해다. 보수 진영에 큰 보탬일 것이다. 당황스러움은 야권 몫이다. 그렇다고 변절로 뭉개기도 어렵다. 시대 속 사건의 비중이 워낙 컸다. 현재 제도권 내 어떤 의원보다 가열찬 투쟁의 역사다. 결국 함운경 활용법은 하나다. 진영을 떠나 한 사람의 견해로 받으면 될 듯하다. 그가 나머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 그 사람들’의 길은 모두 다르다. 그중 이치선 변호사도 있다.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원 출신이다. 경기지역의 관심이 그래서 많았다.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그 후 소련 붕괴와 함께 그의 길도 달라졌다. 노동자 변론과 환경 운동에 투신했다. 지금은 녹색당 정책위원장이다. 당연히 함씨의 이번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론에 기초한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할 것이다. 시간만큼 다양해진 미문화원 점거 농성자들의 현실이다. 다름을 존중하며 가는 그들이다.

86 투사 함운경의 후쿠시마 괴담 비난이 소환한 잊혀졌던 역사 한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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