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부모님이 내게 준 사랑을 기억하라

경기일보 2023. 6.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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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지금은 삼우제가 끝나거나 49일이 지난 후 상복을 벗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마음으론 삼년상을 치르는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왜 삼 년인지는 잘 모른다.

논어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공자의 제자 재아가 삼년상이 너무 길다며 일 년만 해도 충분하지 않냐고 불평하자 공자는 자식이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전적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기간이 삼 년이라고 말한다. 삼년상을 지내는 것은 최소한 그 시간만큼이라도 부모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글 중에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시가 있다. 버전이 워낙 다양해 내용이 제각각이지만 공통으로 나오는 대목이 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음식을 흘리며 먹거나 옷을 잘 입지 못하더라도 이해해다오. 우리가 너희를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처럼. 우리가 나이가 들어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부디 끊지 말고 들어다오. 너희가 어렸을 때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이야길 해 달라고 졸라도 기꺼이 응했던 우리처럼.’

흔히 나이가 들면 아이처럼 된다고 한다. 신체가 노쇠해지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몸의 움직임이나 반응도 갈수록 느려진다. 기억력이 쇠퇴하고 판단력도 흐려진다. 정신을 지탱하던 힘이 예전 같지 않게 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이 어설프고 영글지 못했던 어린아이 때처럼 행동하게 된다. 한데 우리는 부모님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해는커녕 짜증을 내고 귀찮아한다. “아니 왜 자꾸 흘리며 드세요? 옷 또 빨아야 하잖아요”, “그 얘기 지금까지 열 번 넘게 하셨어요” 등등. 그런데 우리가 어려서 비슷하게 행동했을 때 부모님은 어떠셨을까? 부모님이라고 귀찮았던 순간이 없으셨을까? 분명히 아닐 거다. 하지만 참고 이해하며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듬어주셨다. 우리가 이런 부모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답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쉽진 않을 거다. 그래도 최소한 부모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잊지 말고, 적어도 그만큼은 부모님을 이해하려 노력했으면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후회가 남을지도 모른다.

논어의 문장을 하나 더 보자. “부모님의 나이는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기쁘고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두렵다(‘이인’ 편).” 한 십 년 전만 해도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나실 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앞으로 몇 번이나 벚꽃 피는 걸 볼 수 있을까?”, “내가 이제 건강에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가슴이 콱 막혀 온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사람의 생은 유한한 법이다. 어느새 부모님과 함께할 날이 한참 많이 남았다고 자신할 수 없는 시점에 와 버렸다. 공자의 말처럼 부모님이 여전히 함께 계셔 주셔서 정말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상황이다. 한데 이 문장은 부모님이 연로하신 뒤가 아니라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부모님이 영원히 내 곁에 계셔줄 거라 착각하면 안 된다. 언제고 떠나실 수 있다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뒤로 미루지 말자. 괜히 화내고 짜증 부리지 말자. 부모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늘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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