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코스타리카
국토 어디를 가든 울창한 숲·깨끗한 바다 있어
자연과 문명·동물과 인간이 공존... 너무 부러워
지난 2월 코스타리카에 3주간 머물렀다. ‘에코 투어리즘’으로 이름난 곳답게 자연과 문명이,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려 애쓰는 곳이었다. 나무늘보를 비롯해 수많은 야생동물을 만나며 국립공원을 걸어 다녔다. 마지막으로 머문 마을 우비타에는 마리나 바예나 국립공원이 있었다. 혹등고래가 찾아오는 태평양 바닷가였다. 이동 시즌이 끝나 고래는 볼 수 없었지만 바닷가를 걷는 것만으로 마음의 주름이 쫙 펴지는 곳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야생의 바다였다.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시간에 쫓기는 일도 없이 발길이 가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바닷가를 걸어 다녔다.
우비타는 혹등고래만큼이나 2월의 히피 축제로도 유명했다. 여행의 최고 묘미가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믿으면서도 사람 많은 곳은 몹시 힘들어하는 모순적 성격 탓에 사람이 몰리는 곳은 피할 생각부터 한다. 이번에도 축제가 끝난 날부터 우비타에 머물기로 했다. 분명 축제가 끝난 후에 찾아갔는데 우비타에는 내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가격의 숙소만 남아 있었다. 결국 쓰린 마음으로 2박에 50만원이나 하는 숙소를 예약해야 했다. 지금껏 나를 위해 머문 숙소의 최고가를 압도적으로 경신했다. 4성급 ‘에코 롯지’라는데 ‘어디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보자’ 이런 삐딱한 마음으로 찾아갔다. 시내에서 차로 10분쯤 걸리는 숲속에 자리한 숙소는 부근에 편의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열 채 남짓한 독립 방갈로 전체를 나무와 돌을 사용해 소박하게 지은 호텔이었다. 숙소의 온수는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당연히 환경을 위해 어디에도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30도가 넘는 더위를 선풍기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충분했다. 또 생수병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수된 물을 담아갈 수 있는 코너가 따로 준비돼 있었다. 무엇보다 식당과 로비에서 바라보는 태평양의 풍경이 환상적이어서 불순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절정은 숙소의 트레일이었다. 49만평 넘는 정글이 호텔의 사유지였다. 숙소의 지도에는 트레일 세 개의 위치와 소요 시간이 소개돼 있었다. 제일 짧은 트레일은 국립공원 해변까지 이어지는 15분 거리였다. 썰물에만 접근이 가능해 로비에서 조수 시간을 확인하고 내려갔다. 조금 가파른 숲길을 10여분 내려가니 아름다운 바다가 저 홀로 저물고 있었다. 드넓은 모래사장에 사람이라곤 숙소에 머무는 프랑스인 가족뿐이었다. 수건을 깔고 누운 엄마는 책을 읽고, 아빠는 아이들과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붉은 해가 바다로 잠겨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위가 고요해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귓전 가득 차올랐다. 다음 날은 작은 다리 세 개를 건너 계곡과 폭포를 지나 이어지는 ‘마늘 트레일’을 걸었다.
800년 된 마늘나무를 찾아가는 트레일이었다. 잎을 짓이기면 마늘 냄새가 난다는 마늘나무가 숲의 제왕 같은 자태로 서 있었다. 마늘나무까지 다녀오는 산책은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이구아나, 하울러멍키, 아구티 같은 야생동물을 만났다. 마지막 트레일은 내내 해변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인데 이 또한 한 시간 소요.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숙소 안만 돌아다녀도 심심치 않은 곳이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했을 뿐인데 이토록 가까이서 자연을 누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51%가 숲이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원시림이었다. 28개의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이 차지하는 면적은 국토의 28%. 어디를 가든 울창한 숲과 깨끗한 바다가 가까이 있었고 사유지조차 걷기 좋은 산책로를 가진 공원이 많았다.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이 자리한 라포르투나 마을만 해도 슬로스 와칭 트레일, 보가린 트레일, 비스타 아레날 공원, 미스티코 아레날 행잉 브리지 등 인기 있는 트레일과 공원 대부분이 사설이었다. 물론 승마를 즐길 수 있는 목장이나 커피와 초콜릿 투어가 가능한 개인 농장도 많았다. 코스타리카에서 말을 탈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모두 목장이 소유한 거대한 숲과 평원 안에서 호젓하게 승마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사설 공원이나 트레일은 당연히 입장료를 내야 하고 대부분 입장료가 20달러에서 시작했다. 아레날 화산을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푼 다음 날, 사설 공원 ‘웰네스 파크’를 찾아갔다. 머물던 숙소의 주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숙소 손님은 입장료가 면제였다. 별 기대 없이 찾아간 공원은 고즈넉했다. 두 시간 남짓 걷는 동안 내내 나 혼자였다. 잘 가꿔진 길을 따라 정글로 내려가 폭포도 지나치고, 개울가도 걷고, 흔들다리 위에서 열대우림과 활화산도 조망했다. 걷다가 자주 멈춰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야생동물을 찾아보려 애쓰면서. 무엇보다 벤치에 앉아 화산을 바라보던 시간이 선물 같았다. 이곳의 면적은 48㏊. 이 정도 면적에, 이 정도의 자연 지형을 사유재산으로 소유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몇 대를 지켜온 숲이라 해도 대규모 위락시설이나 골프장으로 변하기 쉬울 것 같다. 5만1천179㎢ 면적의 코스타리카에는 겨우 12개의 골프 코스가 있을 뿐인데 그보다 두 배 남짓 큰 10만210㎢의 대한민국에는 525개의 골프 코스가 있다.
공원을 관리하는 자니를 우연히 만나 그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소유한 이 숲을 동생과 둘이 관리한다고 했다. 트레일 주변의 잡초며 나무들은 제초제를 쓰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베거나 기계를 이용해 정리한다고 했다. 이곳에는 두 채의 숙박 시설도 있는데 요가나 명상을 하며 쉴 수 있도록 돼 있다. 자니는 30대 중반 전후의 젊은 나이인데도 식물에게도 말을 걸고, 그들이 고통을 느끼며 사람에게 반응한다고 믿었다. 당연히 요가와 명상에 심취해 있고,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공원을 나서기 전, 짓궂은 마음으로 물었다. 여기를 골프장으로 만들면 돈을 더 잘 벌 것 같지 않냐고.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럼 저 숲에 사는 동물은 다 어떡하고요?” 개발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천혜의 자연을 잘 지켜 관광대국이 된 코스타리카답게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성숙했다.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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