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퀴어 대구’
대구에 때아닌 퀴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2009년 처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동성로에서 열렸다. 30여명 참석했지만 성 소수자 차별 반대와 동성 간 파트너십 법률 제정과 같은 숨겨진 이슈를 세상에 알렸다. 혐오 발언이 쏟아졌음에도 매년 축제가 이어졌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못하다가 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서울과 춘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처럼 반대가 쏟아지면서 대립이 격화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경찰과 대구시 공무원이 격한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적법한 집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경찰과 도로점용 허가 없는 불법 시설물 설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대구시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퀴어 축제는 대구 상징인 동성로 상권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문화를 심어 줄 수 있기에 나도 반대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축제가 열리기 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정치적 명분은 다르다. 경찰이 불법 도로점거를 방조했으니 정당성을 가려보겠다는 것이다. 경찰과 공무원의 몸싸움은 단박에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소수자 혐오, 정치적 이해득실, 법원 판례 해석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사회학자인 내 눈에는 다른 게 보인다. 홍 시장은 뜻하지 않게 ‘공공장소의 질서’라는 사회학의 근본 문제를 공적 이슈로 만들었다. 젠더, 지위, 신분, 계급, 나이, 종교, 인종, 몸과 같은 사회적 범주에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으로 출현할 수 있는 공공장소는 근대성이 만든 위대한 성취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공공장소에 출현한 이방인이 서로 뒤얽히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질서를 탐구했다. 인간은 도로에 나온 일종의 ‘운송단위’다. 차도에는 대형트럭에서부터 소형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덮개를 가진 운송단위가 오간다. 충돌하면 덮개의 껍질이 두꺼운 운송단위는 가벼운 흠집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껍질이 얇은 운송단위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인도에는 덩치 큰 근육질의 남성에서부터 장애인, 어린아이, 노인, 여성과 같이 덮개의 껍질이 얇은 운송단위도 출현한다. 충돌하면 차도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껍질이 얇은 운송단위에는 큰 위협이 된다.
이 때문에 마치 교통코드와 같은 기본 규칙이 필요하다. 차도든 인도든 모든 교통코드의 최우선 목적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자아를 중심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을 체험한다. 문제는 이것이 남들도 그러하기에 서로 겹치고 심지어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인들은 겹치는 ‘자아의 영토’를 함께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같은 공간을 함께 오가도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대방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외양’을 연출할 때 가능해진다. 이 덕분에 위험경보가 필요 없는 예측 가능한 사회가 열린다. 사회마다 정상적인 외양의 폭은 다르다. 폭이 넓은 사회는 외양이 정상을 벗어나도 하나의 패션 정도로 사소화한다. 모두 유니폼을 맞춰 입은 사회는 작은 차이를 중대화해서 처벌한다.
성 소수자는 껍질이 얇은 운송단위다.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외양을 하고 홀로 공공장소에 나섰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쉽다. 정상적인 외양을 벗어났다며 다수자가 온당한 절차 없이 침범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공공장소가 살벌한 차도에 가깝다.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지낸다. 퀴어 축제에선 껍질이 얇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안전하게 누비고 다닌다. 성 정체성을 ‘인정’받으려는 정치투쟁으로 좁혀 보면 안 된다. 공공도로 불법 점거를 바로잡겠다는 ‘정의’의 관점에서 범법화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성 소수자가 성 정체성을 한껏 연출하는 ‘공연’으로 여겨야 한다. 관객은 예의 없는 관심 대신,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예의 바른 무관심’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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