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엘리엇 대응, 정부는 최선을 다했나
지난 20일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18년에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사건의 중재판정이 5년 만에 선고됐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에 약 690억원(약 5359만달러)의 배상액과 법률비용 약 372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지연 이자 등을 더하면, 우리 정부는 약 1300억원에 달하는 국민세금을 엘리엇에 지급해야 한다. 엘리엇은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이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7억7000만달러(약 9917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했었다.
그런데 정부의 부정한 개입에 대해선 큰 논란이 있기 어려웠다. 당시 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하거나 유도했다는 사실이 우리 사법부에서 인정돼 각각 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배포한 23일자 보도자료를 보더라도, 중재판정부는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주주로서의 순수한 상업적 행위에 불과했다거나,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중장기적 수익성을 고려해 독립적으로 심의·표결했고, 국민연금의 의결권만으로 이 사건 합병이 의결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판정이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믿기 어렵다.
정부가 엘리엇 국제투자분쟁에서 국익을 지키려 했는지는 다음 두 가지 쟁점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먼저,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소기준 대우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이다. 한·미 FTA는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한 국제관습법상 외국인에게 인정되는 대우를 최소기준 대우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당시 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확정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협정상 최소기준 대우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부정한 개입으로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피해를 본 것은 외국인인 엘리엇뿐만 아니라 내국인인 삼성물산 소수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불공정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제일모직 지배주주인 이재용 일가가 이득을 보고 삼성물산의 소수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전형적인 소수 주주 착취의 문제이지, 외국인과 내국인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엘리엇이 실제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손해를 입었는지 여부이다. 사실 양사 합병 전인 2015년 8월 엘리엇은 보유 중이던 삼성물산 주식 7.12% 중 4.95%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후 엘리엇은 대금 수령을 거부하며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에 대한 협의를 계속해 2016년 3월 삼성과 합의했고, 당시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했던 주주총회 결의 금지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조정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그런데 이때 합의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또한 엘리엇과 삼성의 분쟁이 표면화된 후 삼성물산 주가가 7만~8만원대로 올랐을 때 공매도나 선물매도 등으로 엘리엇은 이미 상당한 이익을 올렸을 수도 있다. 따라서 판정 과정에서 양측이 합의한 주식매수 가격뿐 아니라 엘리엇이 정부의 개입으로 합병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별도로 벌어들인 수익이 고려되었는지가 중요한 평가 포인트다.
삼성물산의 소수 주주였던 일성신약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으나 엘리엇과 달리 매수청구권 가격 협상이 원만히 타결되지 않았다. 결국 법원에 가격 조정을 신청했었고, 2022년 4월 대법원은 주당 5만7234원이던 매수가격을 6만6602원으로 올리라는 2심 재판부의 판결을 확정했다. 그런데 최근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2016년 삼성-엘리엇 비밀합의에 따라 삼성이 엘리엇에 약 724억원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약 690억원의 배상액은 엘리엇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삼성물산 주식 약 2.17%에 대한 손해액으로 산정되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첫 번째 쟁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연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당 5만7234원에 받아들였거나 아예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국내 소수 주주들보다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는가? 국내 소수 주주들이 겪은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대우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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