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부산에 가면
여태껏 살면서 머리를 몇 번 깎았을까. 일일이 기억하고 헤아릴 순 없다. 대강 어림해 보니 군대, 장발, 학창, 까까머리 시절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올랐다. 그리 만만한 계산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떠난 이후, 부산을 여러 번 가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그 일에 매달리느라 정작 부산은 보지 못했다. 부산에 살 때는 입시에 시달리느라 그랬고 부산을 떠나서는 아예 부산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사랑, 부산이라고 하려면 예전엔 낯이 몹시 간지러웠지만 이젠 들키지 않고 그리 중얼거리고 싶어진다.
이번엔 부산만 보자, 하고 부산으로 갔다. 그냥 가고자 했지만 마냥 갈 수는 없었다. 같이 간 일행 둘은 부산이 사실상 초행이라서 안내는 내 몫이었다. 널리 알려진 관광 코스를 잡았다. 첫날 오후에 도착해 어영부영 보내고 이튿날은 태종대, 자갈치시장, 국제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해운대와 동백섬을 둘러보고 나니 오후 3시.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았다. 부산역에서 저녁 먹기로 약속하고 일행들과 잠시 헤어지기로 했다. 이럴 때 취향이 다른 건 차라리 다행한 일일까. 그이들은 센텀시티로, 나는 젊은 날의 달동네로 흩어졌다.
옛 동네를 찾아가니 비로소 부산의 속살과 나의 원형질을 만난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동네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도로는 조금, 간판은 많이 바뀌었지만 길 하나 건너들면 옛날 냄새가 그대로 몰려나왔다. 눈에 쏙 박히는 우리집도 고스란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저 구석 어디를 들추면 내가 직접 만들고 버린 냄새가 물컹 만져질 것 같았다.
조금은 신기하고 또 조금은 울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골목, 이 대문을 바삐 드나들었던 여드름투성이의 나였던 그 고등학생은 어디로 갔을까. 가까운 공중에 전깃줄이 복잡하게 꼬인 가로등이 어지러웠다.
아직도 기차 시간이 제법 남았다. 무얼 할까? 그 맛있던 짜장면! 저녁 약속은? 약국에 가서 활명수 한 병을 마신 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나는 서슴없이 갔다. 굴뚝이 하늘을 찌르는 건물 3층으로.
부산역 뒷골목 돼지국밥집. 옛날 동네 갔다 오시더니 얼굴이 엄청 환하시네요. 딸아이 말에 나는 모자를 벗으며 말한다. 목욕만 했겠냐, 머리까지 깎았거등.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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