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수능 난입’…‘워워’ 할 측근이 없다

한겨레21 2023. 6. 3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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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입시 비리 수사를 많이 해봐서 교육 전문가"라는 '띵언'만 길이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 배제 지시가 결국엔 사교육 업체를 때려잡는 한바탕 소동극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킬러 문항은 '사실상' 배제됐고 사교육은 '심리적'으로 근절돼가며 공정 수능은 '원칙적'으로 이뤄지는 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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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정치의 품격]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다만 권력 호르몬 과다 분비 대통령을 진정시킬 수 없었을 뿐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이 입시 비리 수사를 많이 해봐서 교육 전문가”라는 ‘띵언’만 길이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 배제 지시가 결국엔 사교육 업체를 때려잡는 한바탕 소동극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뿌리뽑겠다고 으름장 놓더니, 대형 입시학원과 업체 몇 곳을 세무조사하며 본보기로 탈탈 털었다. 정작 수능을 어떻게 손보고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는 선언 말고는 현장 교사 중심의 평가 자문위원회와 출제 점검위원회를 별도로 두겠다는 방침뿐이다. 교육부 직원들에게 연민을 보낸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범인’으로 지목된 국영수 스물두 개 킬러 문항을 골라내기까지 열하루 동안 얼마나 들들 볶였을지.

예년에 견줘 평이했다고 평가받는 2023년 6월 모의평가 정답률을 보면 왜 지금 갑자기 킬러 문항과의 전쟁인지 알 길 없지만, 일 더 키우지 말고 넘어가자.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든 또다시 ‘버튼’이 눌리면 애꿎은 수험생들만 더 피곤하다. 킬러 문항은 ‘사실상’ 배제됐고 사교육은 ‘심리적’으로 근절돼가며 공정 수능은 ‘원칙적’으로 이뤄지는 거로 하자. 사실상 한·미 핵 공유이고 심리적 G8이며 원칙적으로 세수 부족은 아니듯이 말이다.

‘단 한 분의 난동’으로 시작된 이번 소동을 국민의힘바로세우기 대표인 신인규 변호사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어떤 아버지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면서 ‘야, 모기 때려잡아. 에프킬라 뿌려’ 이러는 꼴이다. 그런다고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지나. 물론 모기는 좀 없어지겠지만.”(KBS 유튜브 방송 <최경영의 이슈 오도독>)

문제는 대통령 주변에는 ‘모기가 없어지니 행복합니다!’ 외치는 이들만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왕정으로 ‘타임 슬립’ 한 것도 어리둥절한데, 거기다 조정 신료들이 하루아침에 (업무적 의미에서) 환관이 돼버린 모습을 보는 듯하다. 모두 단 한 분의 시중을 들고 잡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왜 그 자리에 있는 걸까. 자기가 앉힌 대입담당 국장이 어느 누구도 납득할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경질되고, 수험생들은 딱히 그리 어려웠다고 하지 않는 6월 모의평가를 (대통령 보기에) 어렵게 냈다는 이유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하고, 심지어 이들을 이권 카르텔의 대표인 양 몰아붙이고, 평가원에 이어 교육부 감사까지 들어간다고 해도 찍소리는커녕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하는 교육부 장관이라니.

게다가 그는 누가 뭐래도 학력 줄 세우기를 기반으로 하는 ‘수월성 교육’의 대표 신봉자 아닌가. 그런 그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불려나와 쩔쩔매다 어느 순간 확신에 찬 어조로 “대통령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강조한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직후 넋 나갔다가 웃었(겼)다가 끝내 신경질을 낸 한덕수 총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욕심일까 아니면 공포일까.

민주정에서 대통령의 잘못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는 좀 이상하게 변하기 마련이다.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향한 세상의 평가도 좋을 대로 왜곡한다. 성취감, 효능감에 따른 호르몬의 과다 분비 탓이다. 그러니 권력자일수록 옆에서 ‘워워’ 해줄 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통령은 호르몬은 유독 넘치는데 달래줄 이는 유독 없는 것 같다. 내 뜻이 만백성을 이롭게 하리라는 착각 속에서 연일 ‘선군 놀음’을 하고 있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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