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166명 '개념판사님'들이 답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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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한국의 괴담 역사'에서도 돋보이는 게 'ISD(투자자-국가 간 분쟁) 괴담'이다.
10여 년 전 광화문을 점령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의 핵심 논거가 바로 ISD발(發) 사법주권 침해였다.
한·미 FTA 발효 11년간 ISD 제소는 엘리엇을 포함해 4건에 그쳤다.
FTA 발효 전후 10년간 미국의 한국 투자는 2배, 한국의 미국 투자는 4배가량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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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포기' 오판 해명의 시간 도래
백광엽 논설위원
화려한 ‘한국의 괴담 역사’에서도 돋보이는 게 ‘ISD(투자자-국가 간 분쟁) 괴담’이다. 10여 년 전 광화문을 점령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의 핵심 논거가 바로 ISD발(發) 사법주권 침해였다. 미국 자본이 이익 확보에 방해되는 국내 법과 제도를 제소를 통해 바꿔버릴 것이란 무시무시한 분석이 쏟아졌다. ISD 중재로 인해 한국의 공동체적 법체제가 무너져 부동산 등 공공정책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무차별적 ISD 소송과 천문학적 배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넘쳤다.
지난주 나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중재판정 결과는 ISD 괴담 종식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개입했다’는 법원 판결 탓에 출발부터 불리한 분쟁에서 큰 선방을 거둬서다. 배상금은 690억원으로 최초 청구액 1조원의 7%에 그쳤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투자 손실(매입가-처분가) 1040억원에도 못 미친다. 국제기구를 장악한 미국과의 ISD 소송은 편파 판정이 될 수밖에 없다던 선동과 사뭇 다른 결과다.
하긴 ISD 소송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던 주장부터 엉터리다. 한·미 FTA 발효 11년간 ISD 제소는 엘리엇을 포함해 4건에 그쳤다. 이 중 사법주권 침해나 소송 남발로 볼 만한 사례는 없다. 메이슨 펀드의 2억달러 소송이 대기 중이지만 엘리엇 제소와 판박이여서 파괴력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나머지 2건은 부동산 수용에 저항하는 재미동포들의 중재신청이다. 분쟁 당사자가 개인인 데다 청구액도 수십억원 수준이라 ISD 괴담과 무관하다. 결국 탄핵이라는 돌발 상황이 없었다면 ISD 소송 건수가 사실상 ‘제로’였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만만찮은 혈세 유출이 일어나게 됐으니 지금이라도 ISD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단견이다. 기대한 ISD의 긍정적 효과가 뚜렷하다. FTA 발효 전후 10년간 미국의 한국 투자는 2배, 한국의 미국 투자는 4배가량 급증했다. ISD로 투자 안정성이 제고된 덕을 봤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더구나 한국의 연평균 미국 투자는 미국의 한국 투자의 5배다. 우리 기업과 자본이 ISD 조항의 수혜를 더 많이 보고 있다는 의미다.
엘리엇 판정은 괴담을 증폭시킨 판사들을 소환한다. 협정 체결 당시 적잖은 법관이 ‘ISD는 사법주권을 명확히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다. 판사 166명은 성명서를 대법원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1급 고위 공직자인 부장판사가 10명이나 포함된 이례적 집단행동은 괴담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166명의 판사는 요새로 치면 ‘개딸’ 부류의 열광적 지지자들로부터 ‘개념판사님’으로 칭송받았다. “사법권 박탈이자 나라를 판 것”이라고 극언한 이정렬 판사가 대표적이다. ‘가카새끼 짬뽕’의 주인공인 이 판사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수본부장에 지원하기도 했다.
‘ISD 망국론’은 심대한 오판이었지만 개념판사들은 승승장구했다. 서기호 판사는 내친김에 ‘국민 판사’를 자처하더니 의원 배지를 달았다. ‘뼛속까지 친미’라며 대통령과 관료를 맹공격한 최은배 판사는 문 정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송승용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 하의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주도했고, 변민선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ISD 반대 연판장을 돌린 김하늘 판사도 빼놓을 수 없다. 좌파 정치인·교수의 토론을 보고 독소조항이라는 심증을 굳혔다고 해 뜨악함을 안겼던 그는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로 변신했다.
엘리엇 중재판정으로 한·미 FTA 마지막 괴담이 사실상 소멸됐다. 얼치기 선동가는 물론이고 개념판사님들에게도 해명의 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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