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기는 보이지 않아도 빛나요”
장편소설·동화 출간 잇따라
베트남 전쟁 트라우마 다뤄
로드킬 소재 고양이 모험담도
재난·생명윤리 고민 속 가족애
원주 출신 한정영(사진) 작가의 쓰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장편소설 ‘아빠는 전쟁 중’과 동화 ‘한밤중 마녀를 찾아간 고양이’, 작가 지망생을 위한 교양서 ‘어린이·청소년 소설쓰기의 모든 것’까지 올해 벌써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정영의 작품은 거대한 영웅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타인을 위한 용기를 복돋우고, 그들의 아픔을 통해 내적 성장에 다가가도록 이끈다. 사회적 재난이나 소외 이웃 문제 등을 비유적으로 덧대는 모습 또한 그의 방식이다.
■ 아빠는 전쟁 중
아버지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전쟁 트라우마로 이상행동을 한다. 장독대에서 전투 자세를 취한다거나,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이로 인해 중학생 아들 신우와의 관계는 악화만 된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친구들도 신우를 조금씩 멀리한다. 국민학교 때부터 반장 자리를 놓지 않았던 신우는 아버지에 대한 소문으로 결국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다. 골목대장이었던 신우의 위치는 점점 더 몰락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방공호를 아지트삼아 전쟁놀이를 즐겼다.
아버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베트콩 소탕 작전 도중 민간인 학살을 제지하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다친 몸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도둑으로 몰리는 수난을 겪기도 한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연대기 속 아버지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오로지 ‘멈춤’만이 이 부자의 싸움 방식이고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1970년대 원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어른들에게 추억을, 아이들에겐 과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안겨준다. 가령 친구들에게 도시락 반찬으로 싸온 분홍소시지를 나눠 주거나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를 보는 모습들이다. ‘독고탁’, ‘로켓 제작소의 최후’ 등 만화책에 흠뻑 빠졌던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 또한 묻어나온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은 더더욱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가슴 깊이 난 상처 때문이다. 이제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어쩌면 더 긴 싸움을 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 한밤중 마녀를 찾아간 고양이·33번째 달의 마법
‘로드킬’로 희생된 어린 고양이 ‘여름이’의 모험담이다. ‘바람의 길’이라고 불리는 고속도로에서 죽은 여름이는 ‘반빛 고양이’가 되어 유령처럼 엄마 곁을 맴돈다. 여름이는 자신을 기르던 엄마와 가족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들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여름이는 ‘영원의 몸’ 얻기 위해 동물의 털가죽을 벗긴다는 동물원의 악명 높은 마녀를 찾아가로 결심한다. 달빛을 따라 마녀에게 가는 길은 험난하다. 무섭고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만큼 소중하다면, 끝까지 도전하는 고양이의 여정이 아이들에게 용기를 안겨준다. 영원의 몸이 되면 움직일 수도 없지만 여름이에게는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이유가 더 중요했다.
생태 문제와 동물권의 중요성을 다룬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 묘하게 연결된 감상도 안긴다. 동물복제를 소재로 한 전작 ‘닻별’, 역시 고양이를 빌어 상상력의 폭을 재치있게 넓힌 ‘33번째 달의 마법’ 등이다.
‘33번째 달의 마법’의 주인공 ‘봄이’는 ‘검은 강을 건넌 고양이’로 불린다. 고양이들 사이에서 ‘네모난 무덤’으로 불리는 의류수거함에서 살아나온 후 마녀에게 신비한 능력을 받았다. 의류수거함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그 옷 주인의 모습으로 사흘간 살 수 있는 능력. 33번째 달이 떴을 때 사람 옷을 입으면 영원히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약속도 함께다. 도심 속 길고양이들의 힘겨운 ‘묘생’을 그리고 있지만 미리 장치해 둔 흥미진진한 설정 덕에 작품 전반에 활기가 넘친다. 고양이 몸 속에 들어간 듯한 세밀한 감정 묘사는 동물의 다양한 표정과 동작들을 잡아 낸 이한재 작가의 그림과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다. 그래서인지 한 작가의 동화를 읽고 나면 길 위에서 만나는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진다. 특히 그 고양이가 달빛 아래 담장 위에 올라 앉아 있다면.
한 작가는 작품 머릿말에서 다음처럼 당부했다. “함부로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질러서 쫒지 마세요. 잘못하면 우리가 그 고양이와 함께 아주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거든요, 달빛 아래서 고양이를 만난다면 미소를 지어주세요. 그러면 고양이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물어다 줄테니까요.”
검은 강을 건넌다는 것. 동화작가와 애독자들에게는 상상력과 동심이 사라진 마음을 건너가는 일일 것이다.
김여진·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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