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자 900여 명 희생시킨 살인 기계 ‘레이온’, 친일파로부터 시작됐다 (꼬꼬무)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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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기계 레이온이 국내로 들어오게 된 충격적인 전말이 밝혀졌다.
2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는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 - 사라진 308명' 편으로 남양주 최대 인견사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재 사건이 다뤄졌다.
살인 기계 레이온은 이후 중국으로 수출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원진 노동자들이 따졌지만 직업병으로 인한 죽음은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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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김태형기자] 살인 기계 레이온이 국내로 들어오게 된 충격적인 전말이 밝혀졌다.
2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는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 - 사라진 308명’ 편으로 남양주 최대 인견사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재 사건이 다뤄졌다. 사망자는 300여 명, 피해자는 900여 명에 이른다.
1970년 여름, 남양주의 한 마을에서 80여 명이 순식간에 기절했다. 또한 같은 마을에서 꽉 막힌 배수구를 뚫으러 맨홀에 들어간 세 사람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마을 주민 동환 씨는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에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눴던 40대 주부 고 씨가 화장실 수도꼭지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고 씨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은 무려 12명이었다.
이 비극적인 일들은 1966년 마을에 인견사 제조업체 원진레이온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직원 수 1,500명에 15만 평의 면적을 자랑하는 원진레이온은 마을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라 불렸다. 하지만 이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 극심한 두통, 손발 마비, 정신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수십 명, 수백 명까지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큰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사당동에서 작고 허름한 의원을 운영하며 빈민층 환자들을 진료해주던 김록호 원장은 원진레이온을 다니던 환자들을 진료했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져가며 고군분투 끝에 원인을 밝혀냈다. 그 원인은 바로 레이온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황화탄소(CS2) 때문이었다. 단기간에 고농도에 폭로되어 발생하는 급성 중독의 경우 즉시 혼수상태로 빠져 사망하는 무서운 물질이다.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 기업을 상대로 긴 투쟁을 시작했다. 원진레이온 측은 몸이 아파서 퇴사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보상금을 주며 입막음을 시도했다. 노동부가 1986년 25,000시간 무재해 달성으로 원진레이온에 표창장을 전달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가운데 살인 기업 원진레이온이 설립된 과정이 공개됐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로 경제 성장이 최우선이었다. 이에 식민지배 문제를 두고 무상 3억 달러, 경제차관 2억 달러로 일본과 한일 협상이 진행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본은 중고 레이온 기계도 포함된 금액이라며 기계를 한국으로 보내려 했다. 정부는 화신그룹 총수이자 친일파 1호 박흥식의 의견을 따라 살인 기계 레이온을 국내로 들여왔다. 살인 기업 원진레이온의 시작이었다.
김록호 원장은 피해자들을 위해 주치의로 끝까지 함께 했다. 회사 측에서 부른 대학 병원 의사들과 직업병 인정 여부를 두고 장기간 논쟁을 펼쳤다. 결국 이황화탄소 중독의 특수한 근거를 밝혀내 직업병 인정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환자들은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살인 기계 레이온은 이후 중국으로 수출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원진 노동자들이 따졌지만 직업병으로 인한 죽음은 멈출 수 없었다.
한편 보상금을 받은 노동자들은 병원을 세우는 일에 기여했다. 이들은 산업체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원진 녹색 병원’이 설립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초대 병원장은 김록호 원장이 맡았다. 사건 발생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피해 노동자들과 김록호 원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로 기억되고 있다.
tha9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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