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이름 없이 지는 별들 명예, 누가 지켜주나

윤완준 정치부장 2023. 6. 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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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서 일하다 이름 없이 지는 별."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는 "국정원이 비록 부침을 겪어 왔지만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 인사는 "퇴직 뒤에도 무슨 일을 했는지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직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이다. 이게 땅에 떨어지면 국정원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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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정권 바뀔 때마다 악순환
국정원 다수 직원 자부심 살릴 개혁 방법 찾아야
윤완준 정치부장
“음지에서 일하다 이름 없이 지는 별.”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는 “국정원이 비록 부침을 겪어 왔지만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정원에는 임무 수행 중 숨진 요원을 기리는 ‘이름 없는 별’ 추모석이 있다. 현재 별의 숫자는 19개다. 이 인사는 “퇴직 뒤에도 무슨 일을 했는지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직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이다. 이게 땅에 떨어지면 국정원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인사 파동이 그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짓밟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재가한 국정원 1급 인사를 철회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 A 씨가 인사에 무리하게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얘기다. 승진 인사 대상에는 A 씨의 입직 동기가 여럿 포함됐다.

인사 파동의 팩트는 분명했다. 그런데 책임 소재를 둘러싼 국정원 내부 갈등은 내전을 방불케 했다. A 씨 측은 이번 1급 인사가 “문재인 정부 서훈, 박지원 전 원장 시절 득세한 좌파들 때문에 망가진 국정원을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를 “A 씨의 인사 전횡으로 모는 건 인사에서 배제된 김 원장 반대 세력의 쿠데타”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반면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쪽은 “좌파와 결탁한 반개혁 세력의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한다.

이 내전은 인사 파동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마저 극과 극으로 전달하게 만들었다. A 씨 측은 교체 대상이 됐던 미국과 일본 정보거점장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 “비리 때문에 소환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두 자리에 인사를 하려다 인사 파동으로 뒤집혔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국정원 인사는 “징계성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임기가 다 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두 자리에 A 씨와 가까운 이들을 앉히려 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난장판 속에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떠났다. 귀국 뒤인 29일 윤 대통령은 첫 개각 날 김 원장으로부터 조직 정비 보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의 재신임으로 김 원장은 유임됐다.

하지만 곪아 터진 국정원의 뿌리 깊은 파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정부 때 망가진 국정원을 정상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A 씨가 부적절하게 국정원장이나 다른 고위직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명분이 잘못된 방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A 씨는 문재인 정부 때 한직으로 밀렸다고 한다. 그 역시 문재인 정부의 부당한 인사 피해자일 것이다. 이번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이들 가운데서도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적폐 청산”을 내세워 국정원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폐해 때문에 “국정원 내부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글의 법칙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좌우를 가르고 파벌을 만드는 방식으로 무리한 인사를 정당화하면 직원들 간 적대감만 커질 것이라고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는 말했다. “진정한 우파는 소수고 대부분은 전 정부에 부역한 좌파나 기회주의자라는 식으로는 국정원 직원 다수를 설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인사가 특정 라인에 편중되면 조직을 스스로 특정 울타리에 가두게 된다. 그러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파벌 싸움의 악순환이 또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다수 직원의 명예와 자부심을 살리며 개혁할 방법을 찾아야 국정원이 진짜 살아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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