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선생님은 술 안 마시세요?

2023. 6. 2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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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음주 습관 때문에 실랑이를 종종 한다.

치료에 도움이 되라고 말했던 건데 환자는 짜증이 났는지 대뜸 내게 "선생님은 술 안 마시세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우울증 환자가 술을 끊어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술로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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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 음주에 익숙해진 뇌는 과잉 흥분상태
부정적 감정 술로 억누르면 더 큰 문제 생겨
환자들의 음주 습관 때문에 실랑이를 종종 한다. 우울과 불안, 그리고 불면증을 치료하는 동안 금주하라고 설득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분하고 억울해서, 끓어 오르는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는 거라고 환자들은 항변한다. 맨 정신으로는 현실의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술을 마시는 건데, 그런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금주하라며 자신을 압박한다고 내게 되레 화를 내기도 한다. 치료에 도움이 되라고 말했던 건데 환자는 짜증이 났는지 대뜸 내게 “선생님은 술 안 마시세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음주 습관을 조절하는 건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술을 한두 잔씩 하다 보면 불면증은 악화된다. 적은 양이라도 술을 마시면 빨리 잠드는 것 같아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지면서 중간에 자주 깨고, 꿈 많은 잠을 자게 된다. 수면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다. 만성적인 음주에 익숙해진 뇌는 평소에는 과잉 흥분 상태가 유지되고, 술 없이는 긴장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게 된다.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 중 하나도 술이다. 술을 마시면 순간적으로는 이완이 되지만 술이 깰 때쯤의 뇌는 과각성 상태가 된다. 폭음한 다음날 아침에 공황 발작이 잦은 이유다. 공황장애 환자가 술 마신 다음 날 새벽에 샤워하다가 가슴이 쪼이고 숨이 막히면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와서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놀라서 응급실을 찾기도 한다.

우울증은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2511명의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1년마다 우울감과 문제 음주를 조사해서 분석했더니 전년도의 문제 음주가 다음해의 우울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 환자가 탄수화물 섭취를 조절하지 않고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혈당 조절에 실패하는 것처럼 우울증도 생활 습관이 나쁘면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다. 우울증 환자가 술을 끊어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기분이 처지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술을 마신다.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여럿이 모였을 때 술의 힘을 빌려 흥을 돋우기도 한다. 황홀감에 젖는 건 도파민이 뇌의 측좌핵을 활성화시키면 분출되는 내인성 오피오이드가 전두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은 20분 안에 뇌에 흡수되어 도파민과 똑같은 방식으로 쾌락 중추를 자극한다. 문제는 우리가 좋은 느낌만을 쫓으려 할 때 생긴다.

기분은 항상 좋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기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울은 언제나 반복해서 찾아온다. 불안은 실존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다. 불확실한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이 느껴야만 하는 당연 감정이다. 술로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술로 억누르다 보면 정서를 수용하고 조절하는 힘은 약해지고 나중엔 더 큰 아픔을 겪게 된다.

음주는 심리적 회피다. 자기 문제에서 도피하려고 술을 마시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아 괴롭다고 술로 뇌를 마취시키려고 해선 안 된다. 이런 유혹이 찾아오면 스스로에게 묻자. “술을 마셔서 잊어 버리고 싶은 나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술 생각이 난다면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에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 술을 찾는 건 아닌가?’ 하고 자기 마음을 점검해봐야 한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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