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출신’ 차관 전진배치…장관 패싱 ‘우회 국정’ 펼치나
차관급 13명 인사교체 단행
윤 대통령과 부처 ‘핵심 고리’
국정 장악력 높이는 데 중점
책임장관제 퇴색 우려도
인사청문회 정치적 부담에
장관급 교체는 2명에 그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장차관 인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개각 폭을 최소화하는 대신 차관급을 대폭 교체한 점이다. 특히 대통령실 현직 비서관을 대거 부처 차관으로 전진배치해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들이 대통령실과 부처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책임장관제가 퇴색하고 실세 차관이 부상하는 ‘차관 정치’, 우회 국정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날 장관급 2명, 차관급 13명의 교체 인사를 발표했다. 중앙 부처 차관 내정자 12명 중 5명은 현직 대통령실 비서관이다. 먼저 자리를 옮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을 포함하면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은 7명으로 늘어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집권 2년 차를 맞이해 개혁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부처에 좀 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서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지금 정부만 특별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대통령실 참모들을 대거 차관에 기용한 데는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공직사회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차관에 발탁된 조성경·임상준·김오진·백원국·박성훈 비서관은 대선 캠프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호흡을 맞춰온 이들이다. ‘용산 출신’ 차관들은 윤 대통령의 뜻을 각 부처에서 실행하는 핵심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이 이날 5명의 비서관을 만나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고 한 것도 핵심 국정의제로 내세운 ‘이권 카르텔’ 문제에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또 “부패한 이권 카르텔은 늘 겉은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다”면서 “이를 외면하거나 손잡는 공직자들은 가차 없이 엄단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권 카르텔 해체 문제에 공직사회가 충분히 대처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무회의에서도 “새로운 국정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자세)를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 조처하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실 참모 출신들의 대거 이동 자체가 부처 공직자들의 고삐를 죄는 압박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이들이 실세 차관으로 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장관 운신의 폭이 좁아져 ‘책임장관제’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무직인 장관이 책임지는 방식은 통상 경질이나 자진사퇴 등 인사이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각종 논란이 불거졌을 때 장관에게 책임을 지운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경질 요구가 많았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유임됐고,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난도 논란에서는 실무 간부인 교육부 국장을 경질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번 인사는) 대통령실이 장관을 건너뛰고 직접 부처를 지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장관은 결재만 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부처는 실세 차관들을 통해 대통령실의 하명을 실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관 인사와 대비되게 부처 장관 교체는 통일부 장관을 바꾸는 정도로 최소한으로 이뤄졌다. 큰 폭으로 개각이 이뤄질 경우 연쇄적인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며 일해야지 기존 관성대로 하다 잘못하면 ‘카르텔’이 될 수도 있다”면서 “국민이 선택한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데 장관이나 차관이나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내정된 장미란 용인대 교수는 1983년 10월생으로 전날 시행된 ‘만 나이 통일법’에 따라 ‘30대 차관’(39세)이 된다. 30대 차관은 1977년 만 39세에 임명된 서석준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 이후 46년 만이다. 외교부 2차관에 발탁된 오영주 주베트남 대사는 외무고시 출신 외교부 첫 여성 차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유정인·유설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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