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세력’ 몰이에…“윤 대통령 협치는커녕 정치 포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반국가 세력이 북한 공산집단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커다란 후폭풍이 일고 있다. 대통령이 여론몰이용 색깔론 수준을 넘어 극우보수주의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전임 문재인 정부와 현 야당을 부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야권의 우려와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9일 기자들과 만나 “대결과 갈등을 부추겨서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야당들조차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들이 동의하기도 어렵고 용납할 수도 없는 극단적 표현”이라며 “국민의 동의 위에서 추진된 한반도 정책을 문제 삼아서 전임 정부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 통합의 정신에 정면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곧 국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대통령실의 입장을 듣겠다고 밝혔다.
윤건영 의원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 21명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을 거세게 비판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말은) 극우보수 단체의 대표나 할 법한 천박한 발언”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48%의 국민도 윤 대통령에게는 ‘반국가 세력’이고 대한민국 국회도 반국가 세력이 접수했다는 말이냐”고 규탄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극우보수만의 대통령으로 남은 4년을 끌고 가겠다는 선전포고”라며 “어제의 발언이 정말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라면, 대통령이 당장 나서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출연해 “정말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자기는 그 반국가 세력에 가서 검찰총장은 왜 했느냐”며 “극우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져 가는 거 같은 느낌이다. 점점 그쪽에 포획이 돼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전날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에게 “극우 유튜브 채널 시청을 끊으시라”고 촉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해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이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며 사실상 문재인 정부와 현 야당을 겨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윤 대통령은 애초 보수정당 본류가 아니어서 ‘보수냐 아니냐’는 평가가 갈렸지만, 이념적 성격이 강한 발언들을 통해 반공보수주의를 내면화한 인물이라는 걸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처럼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를 뛰어넘으려고 이념 공세를 동원하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은 이날 한술 더 떠 색깔론을 이어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한 발언은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반발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적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협치는 고사하고 정치를 포기한 발언이고, 내년 4월 총선까지 국정 운영은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며 “그런 인식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우리 경제와 안보에 해가 된다면 반국가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난 정부나 특정 세력을 겨냥한 게 아닌 일반적인 말씀이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반안보 세력으로부터 구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자유총연맹)과 만나 한 얘기니,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를 감안해 듣는 게 좋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에도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며 현 야권을 적대시하는 듯한 인식을 보였다. 지난해 9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두고 “북한에만 집착하는 학생 같았다”고 비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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