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차관 장미란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2023. 6. 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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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은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의 강권으로 중3 때 역도 훈련장에 억지로 발을 들여놨다. 재능이 워낙 뛰어난 데다 반복을 좋아하는 성격 덕에 많게는 하루 5만kg에 달하는 연습량을 소화해냈다. 은퇴 후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도 공부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바벨을 잡으면 스트레스가 싹 가셨다고 한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역도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운동”이라고 말한다.

▶역도 영웅 장미란은 2012년 올림픽 스타 호감도 조사에서 박태환과 김연아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가 크게 호감을 준다”는 분석이 따랐다. ‘국민 호감’ 수식어에 대해 장미란은 “어르신들은 무거운 역기 드는 게 안쓰러운지 고생한다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어린이들은 제 이름을 부르면서 따라오는데, 수퍼맨 좋아하는 것처럼 나를 좋아하나 이런 생각도 한다”고 했다.

▶장미란은 압도적 실력으로 세계선수권 4연패,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이뤘다. 그러나 실패의 순간에 더 깊은 감동을 안겼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선 중국 선수 자세가 크게 흔들렸는데도 성공 판정이 나면서 장미란이 은메달에 그쳤다. 그래도 장미란은 물집이 터져 피로 물든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던 2012년 런던에선 어깨 뒤로 바벨을 떨어뜨리고 나서 손에 입을 맞춘 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바벨을 어루만졌다.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선수 생활 막바지엔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할 만큼 여러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부상이나 판정, 불운, 나이 탓을 하지 않았고 주어진 기회와 결과에 감사했다. ‘국민 호감’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장미란은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겪는 설움을 잘 안다. 선수촌 시절엔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하는 왕언니로 통했다. 재단을 세워 스포츠 꿈나무 등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쳐왔다. 대학교수가 된 그는 인생과 역도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주어진 무게를 견디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장미란이 29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임명됐다. 그는 10년 전 은퇴 때 “아무 꿈도 없던 중3 여학생이 역도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제가 받은 것을 돌려드리려고 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때가 된 것 같다. 장미란이 선수 시절처럼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행정으로 한국 스포츠 수준을 올려주기를 바란다.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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